얼마 전 강진에 온 강호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이 영랑생가에 들러 문필봉 얘기를 했다. 문필봉은 산봉우리가 붓의 끝처럼 뾰쪽하다. 문필봉 기를 받은 장소에서는 문인이나 학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조용헌 선생은 영랑생가 안채에서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를 주목했다. 군동 금사봉이다. 뾰쪽한 봉우리가 생가 안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영랑은 한국 서정시인의 대가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금사봉 문필봉은 영랑생가 주변에도 영향을 주었을까. 영랑생가 바로 뒤쪽에는 조선시대 관에서 운영하는 금서당이란 서당이 있었다.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06년 8월에는 강진 최초의 근대 학교가 됐다. 영랑이나 현구등 강진의 내로라한 문인들이 모두 이곳을 나왔다.

금서당은 훗날 화가인 완향 김영렬 선생이 매입해 개인 화실로 이용했다. 그림을 그리는 붓이야 말로 끝이 뾰쪽하다. 종류도 수십가지다. 서당이 화실로 이용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 정도면 금서당이야 말로 영랑생가를 뛰어넘는 문필봉 표적이라 할 만하다.

영랑생가가 있는 탑동마을은 한국바둑계의 거목 김인 국수가 태어난 곳이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우승하고 71년까지 6연패를 달성했다. 예부터 바둑과 신선, 문필봉은 한 짝이라고 했다. 문필봉과 바둑이 어울어진 곳이 많다. 

영랑생가 주변 문인들도 적지 않다. 유명 동화작가 김옥애 선생이 탑동마을 117번지 태생이다. 김옥애 선생은 197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돼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송순문학상 대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휩쓸었다. 영랑생가가 탑동 221번지다. 금사봉 문필봉에서 활을 쏘면 한 화살이 두 집을 관통할 거리다.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재석 시인도 탑동마을 출신이다. 숨어지내는 시인이지만 지금까지 낸 시집이 187권에 달한다. 여기에 실린 시가 1만2천여수라고 한다. 시인 주전이 선생과 희곡작가 한옥근 전 조선대 교수도 탑동이 고향이다.  

강진에는 금사봉에만 문필봉이 있는게 아니다. 성전의 월각산, 강진읍의 서기산, 만덕산(필봉), 군동의 화방산등에도 훤칠한 문필봉이 보인다. 그 기운이 창창하다고 하니 지금 강진의 어디에선가 영랑에 못지 않은 문재가 자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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