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읍 사람들은 하루 종일 우두봉(牛頭峰)을 바라보며 산다. 여기에 딸린 기관이 많다. 소의 오른쪽 귀(고성사), 왼쪽 귀(핑경동. 강진농고 자리), 코(군청자리), 혀(의료원 옆 시끄테), 초지(목리마을), 목동(목화마을)등이 포진해 있다. 눈, 뿔도 있다. 소가 수레를 끈다는 가우도가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이 모습에 쎄게 끌린 사람이 있다. 조선일보에 20년째 ‘조용헌 살롱’을 연재하는 조용헌 선생이다. 순천 사람으로 풍수와 명리학에 해박한 자칭 강호동양학자다. 선생은 최근 발매된 주간조선 2월 7일자 ‘조용헌의 영지순례’란에 강진의 우두봉을 조명한 장문의 글을 실었다. 강진 곳곳을 발로 뛰고, 듣고, 느끼며 적은 글이다.

강진 사람들은 왜 강진읍 주산을 우두봉이라 불렀을까. 조용헌 선생은 강진만이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산을 오래전부터 소머리로 상징한 이유가 고사를 지내기 위해서라고 규정했다. 거대한 소머리를 얹어 놓고 강진만을 드나드는 뱃사람들, 즉 해상무역 종사자들의 안전과 사업번창을 위해 드리는 희생제물이 소 대가리라는 것이다.
 
조 선생은 우리나라가 소머리 제사 전통이 깊은데, 가장 큰 규모로 보여주는 심벌이 바로 강진의 우두봉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진읍내에 여러가지 지명이 있는 것은 일종의 풍수적 비보(裨補)다. 씨끄테, 핑경동, 초지, 목아동등은 소머리의 제사적 기능을 확실히 작동시키기 위한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소재로 강진만과 남포마을을 거론했다. ‘강진만(灣)의 안으로 들어와서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포구가 남포다. 이 남포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봉우리가 바로 우두봉이다. 고대로부터 강진만에 들어오는 모든 뱃사람들은 이 우두봉을 바라다보며 소원을 기원하고 안전 항해를 빌었을 것’이라는게 조 선생의 해석이다. 

이는 다시 소를 숭상한 세계 역사와 직결된다.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고대부터 소를 끔찍히 숭상했고, 로마도 원래 소를 신봉했다. 농경사회의 핵심 키워드는 소다. 소와 소 대가리로 말할 것 같으면 강진이 세계사에 가장 확실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마을 당골 용한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소 관련 지명이 강진에 하도 많아 그 뜻과 의미를 잊고 살았다. 우두봉이 이렇게 쎈 줄 몰랐다. 조용헌 선생이 우리의 소 대가리를 때려 주었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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