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부종/ 조선대 고전번역원 고전번역가

필자는 지난 여름부터 《남강서원지》를 가로로 재편하고, 내용을 현대에 맞게 리모델링 하고 보니 말쑥한 신사가 된듯하다. 겉모습만 바뀐 것이 아니다. 내용도 알차고 얻을 것이 많으니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며칠 전 카타르에서 2022 FIFA 월드컵이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 우승의 중심에 리오넬 메시가 있다. 과거에 메시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나가면, 언제나 월드컵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많은 사람의 비난 때문에 결국 메시는 죄책감과 자포자기 상태에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아르헨티나의 작은 시골 마을 초등학교 여교사가 메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고, 그 줄거리와 핵심은 이렇다.

“저는 오늘 축구팬이 아닌 한 사람의 교사로서 당신에게 편지합니다. 그런데 당신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지금 영웅이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대표팀 은퇴는 당신을 욕하고 깎아내리는 이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처럼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패배를 통해 성장하는 것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기는 것만이 우선이고 유일한 가치’라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됩니다. 

어린 나이에 ‘성장 호르몬 결핍’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은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으며 자랐는지 우리 모두 잘 압니다. 지금 당신이 은퇴하면 이 나라 아이들은 당신에게 배웠던 노력의 가치를 더는 배우지 못할 것이고, 지금 당신처럼 졌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한다면, 오늘도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당신을 얘기할 때 당신이 얼마나 멋지게 축구 하는지보다 프리킥으로 단 한 골을 넣기 위해 같은 동작을 수천 번이나 연습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모든 팬이 당신에게 승리와 우승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웅은 패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이길 때는 같이 이기고 질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줘야 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때만큼은 리오넬 메시가 아닌 아르헨티나 그 자체라는 마음으로 대표팀에 남아 줬으면 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위대한 우승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결국, 메시는 6주 만에 대표팀 복귀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비난을 극복하고 조국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남강서원은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우암 송시열선생이 제주도로 귀양 가게 되었고, 중간기착지인 강진 성자진 포구에서 바람이 불어 발길이 묶이게 되자 만덕사에 10여 일간 머문 인연으로 그에 관한 상세한 기록과 주자 선생을 연구하여 적통을 이었고, 그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손재 박광일 선생 등 세분을 모시는 서원이다.

그런데 120년 후 기사년(1809)에 주자 선생이 갈필[칡으로 만든 붓]로 쓴 친필이 나무에 새겨진 갈필판 등이 배에 실려 표류하다 신기하게도 당시의 성자진 포구로 떠내려왔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남원의 해당 관청으로 옮기려고 소달구지에 싣고 강진의 경계에만 다다르면 소가 나아가지 못하거나 넘어져 하는 수 없이 남강서원에 보관해왔던 세세한 기록은 재미있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이를 가상히 여긴 전국의 유림이 힘을 합하였고, 타 서원과 달리 관내 59개 문중이 합심하여 이루어진 특이한 서원이다. 도지정문화재로 등록되었고, 다른 얘깃거리도 많아 관광에도 제격인 서원이다.

세상에는 메시도 필요하고 초등학교 교사도 필요하다. 필자는 감히 메시를 설득한 초등학교 여교사와 견줄 순 없으나, 우리 전통과 고전 속에는 세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만들 가치가 충분하다는 근거와 자료, 그런 신념이 넘친다고 자부한다.

새롭게 재편한 '남강서원지'에는 이러한 신비로움 외에도, 죽음을 앞에 둔 한 인간[우암선생]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되고, 우암 선생이 제시한 ‘直(직)’이라는 글자 하나에 응축되어있는 사상을 마주하게 되면 여러분의 모골이 송연해질 것이며, 거기에서 얻은 우리 선조의 삶의 자세를 온 세상에 알려야 할 의무를 느낄 것이다.

우리가 굴복하지 말아야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고전 번역가로서 행복한 여름과 가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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