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원이 체포되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기록에 없다. 단지, 김학원이 체포된 후에도 광양란을 일으킨 강진사람 강명좌와 김문도로부터 보고를 받다가 들통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중형을 면치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는 광양란의 주동자 5명(강명좌, 김문도 포함)에 대해서는 한양으로 압송시켜 추국한 다음 모반대역죄를 적용해 능지처참했다. 적극 가담자 44명은 전라좌수영에서 참수했다.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김학원은 강명좌, 김문도와 전라병영성을 공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으나 실행도 못해 보고 혼자서만 체포되고 말았다.

거사가 성공만 했으면 김학원은 개과천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에는 광양란의 상황을 보고 받은 것도 탄로나 어느 하나 역할도 못해 보고 죽임을 당해야 했다.

며칠전 나주에 거주하는 김병균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진일보에 광양란 기사가 게재된 직후 였다. 30여년 전까지 강진사람들이 ‘학원이 신세’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썼는데 그 학원이가 김학원이 틀림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우선 ‘학원이 신세’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는지부터 확인이 필요했다. 진짜 그랬다. 60대 중반이상의 강진사람이라면 대부분 ‘학원이 신세’라는 말을 알았다.

공직생활을 오래 한 나종식(85) 회장이 상세하게 말해 주었고, 전 언론인 김주호(72) 강진농협 감사도 생생히 기억했다. 서울지하철공사를 퇴직한 향우 황기정(65)선생은 고등학교때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한 말이라고 했다. 

시기적으로 전라병영 공격을 계획하다 김학원이 체포된게 155년 전이다. ‘학원이 신세’가 30여년전까지 유행했다면 불과 100년 안팎이 된다. 그 전으로 올라가면 ‘학원이 신세’ 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훨씬 가까워 진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개연성이 충분히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학원이 신세’란 소설이 보인다. 1930년대 25살 먹은 한 청년에 관한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을 등에 업고 설치다가 일본이 떠나자 하루 아침에 거지신세가 됐다는 이야기다.

강진 김학원의 소문이 다른 곳으로 퍼져 제3의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면 전국 어디에선가 있었던 ‘학원이 신세’가 강진으로 유입된 것일까. /계속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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