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읍의 상업 중심지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미래를 연다

 

남문마을은 강진읍의 상업 중심지다. 주요 상가들이 남문마을에 밀집돼 있다. 한편으로 마을의 북쪽은 재미있는 강진의 역사를 듬뿍 담고 있는 곳이다. 오랜 역사와 현대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마을이다.

남문마을의 경계는 경찰서앞 길 건너편 청소년문화의집을 시작으로 남쪽으로~ 남문마을은 상가 밀집 지역이기도 하지만 한때 강진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다.  
 

청소년문화의집 건물이다.
청소년문화의집 건물이다.

 

지금은 강진읍 서성리 홍암마을에 있는 도립 강진의료원의 탯자리가 바로 남문마을이다. 지금의 청소년문화의집이 있는 곳이다.

1947년 8월 일제가 패망 후 떠나면서 유곽으로 사용되던 강진경찰서 아래 일본식 2층 목조건물에 ‘도립 강진병원’이 들어섰다.
 

옛 강진극장 건물이다.
옛 강진극장 건물이다.

 

이 건물은 한때 강진도서관으로 사용되다가 강진문화원 건물이 들어 선 이후 지금은 강진청소년문화의집이 들어섰다.

도립병원은 1963년 지금의 강진우체국 아래 상가밀집 지역으로 옮겼다가 82년 지금의 서성리 홍암마을로 자리를 이전했다. 도교육청과 강진읍사무소도 남문마을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갔다.

수성당 건물이다.
수성당 건물이다.

 

남문마을의 큰 자랑거리는 강진군도서관이다. 강진군도서관이 문을 연 것은 1965년 1월이다. 전국 군단위에서 경기도 파주와 함께 도서관이 가장 빨리 생겼다.

강진이 파주와 함께 전국 최초로 마을문고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도서관 건립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정부가 돈이 없을 때라 시범지역만 선정해 놓고 도서관을 알아서 좀 지으라는게 정책 방침이었다.
 

강진농협앞 거리다.
강진농협앞 거리다.

 

그래서 강진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임이 일어났다. 자발적으로 주민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지금의 강진경찰서 아래 일제강점기 유곽건물로 이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강진군립도서관이 출범했다.

강진도서관은 1986년 2월에 지금의 강진우체국 건너편으로 이전해 본관을 준공했다. 최근에는 도서관 건물 뒤쪽에 다목적별관을 세워 어린이와 학생, 부모가 함께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중앙로 거리다.
중앙로 거리다.

 

조선시대 동헌(현청)이 가까웠던 남문마을은 강진에서 가장 오래된 노인당인 수성당이 있다. 지금도 고풍스런 건물이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수성당은 보은산이 멀지 않고, 활을 쏘는 양무정이 지척에 있다.

임명직 시절, 군수나 경찰서장이 부임하면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아 지역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수성당은 과거 강진 어르신들의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 조용한 모습이 한적한 동네의 오래된 한옥을 연상케 한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지금의 도서관 자리에 있었던 큰 연못은 남문마을 주민들은 물론 모든 강진사람들의 큰 추억거리다. 사람들은 연못을 연지(蓮池)라고 불렀다. 원래 남성리가 연지리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연지가 마을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컸다.  

연지는 원래 강진읍 중심가인 도서관과 우체국, 강진읍교회을 아우르는 넓은 면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연지의 둘레는 1,255척(380m)으로서 축구경기장 보다 더 큰 연못이었다. 연못에는 홍련과 백련을 심어 수중에는 잉어가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극장통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극장통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연지의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를 신설하면서 반토막으로 축소됐다. 이후 우체국 부근은 일본인 소학교를 짓기 위해 매립됐고 남은 연지도 1967년 이후해서 매립, 그 자리에 1984년 도서관 신축공사를 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훌륭한 도서관이 세워져 강진사람들의 지적 양식을 늘리는 큰 기능을 하고 있다./주희춘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