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유통의 어려움 온라인 시장 개척으로 이겨냅니다”

아버지 강기성 작가의 뒤를 이어 활동
굿즈 등 신규 상품개발, 온라인 홍보 집중

 

 

청년의 도전은 미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강진에서 청년의 약진이 곧 희망의 바로미터가 되는 이유이다. 

강진은 전국 최대 청자 도요지로, 전국의 50% 수준인 188개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청자 도시의 위용을 자랑하는 강진에서 고려청자의 맥을 잇고 있는 청년들은 누구일까?

평균 제작 기간 1~3개월, 흙 준비에서 모양을 만들고 문양을 장식해 건조과정을 거쳐, 다시 초벌 이후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거친 후, 불량품을 선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좋아서 하지 않으면 결코 ‘업(業)’으로 삼을 수 없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화려한 듯 하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한 맛, 청자는 고려인의 파란꽃’ 이라는 미술사학의 대가 고유섭의 표현대로, 고려청자가 갖고 있는 비색(翡色)의 깊은 아름다움은 인위적인 색으로는 뿜어낼 수 없는 고고한 매력과 기품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다양한 생활 자기에서 청자 오르골, 청자 협종, 청자 국보 미니어처 등 현대의 감각을 다시 입힌 다양한 강진 청자의 작품 혹은 제품들은 ‘청자에 인생을 건 청년’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 곁에서 다양한 모습들로 되살아나고 있다. 2023년 12월, 강진 청자에 인생을 건 청년들을 만나본다. 

다산도자기의 강하늘(32) 대표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도자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강진 청자와 함께 청춘을 보낸 강기성 옹의 자녀로, 어린 시절부터 점토를 손에 묻히고 화목 가마에서 불구경하는 일은 인형 놀이보다 더 재미있었다.

강기성 씨는 중국, 일본, 남미 등 다양한 해외 전시와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등, 셀 수 없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강진 청자의 큰 산 같은 존재로, 1990년 다산요를 처음 설립한 창업주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개량 한복에 점토를 묻힌 채 밥을 먹고 또 도자기를 구웠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강하늘 대표에게 청자는 일상이자 아버지의 생계였던 셈이다. 아버지를 돕다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지금 그녀의 명함에는 다산도자기의 대표라는 공식 명칭이 새겨져 있다.

어머니 이미자씨는 20년째, 조각가로 활동 중이며, 두 살 터울의 동생 강보람씨도 다산도자기 공방을 함께 이끌어 가는 든든한 파트너이다. ‘청자 가족’이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강 대표는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동생 보람씨는 도예차문화과를 전공했다. 언니, 하늘 씨가 제작에서 유통 관리까지 전분야를 아우른다면, 동생 보람 씨는 청자 제작에만 집중한다.

여기에 고문은 청자 빚기 경력 36년 차의 아버지와 20년 이상 조각가로 활동해 온 엄마이다. 고려청자를 차별화시키는 상감기법에서 조각의 기술은 유용하게 쓰인다.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만들어진 다산도자기의 제품들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다산도자기의 제품들은 현대적이면서도 단순한 것을 추구한다. 최근 청자의 상징이었던 전통 문양 ‘운학’이 힙(hip)해지는 추세에도 주목한다. 다양한 전통 문양에는 별도의 특허권이 없이 다양한 굿즈에 활용이 가능해, 이를 청자를 너머 다양한 상품에 접목해 보고 싶다.

강진에 둥지를 튼 것은 부모님이 강진에서 도자기 사업을 꾸려온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진이 갖추고 있는 풍부한 청자 인프라를 빼놓을 수 없다.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도 물어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고려청자박물관이 코앞이고 이곳은 군에서 공채된 도예가들의 작업터이기도 하다. 함께 하는 공방들도 서로 정보를 나누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조합을 활용한다.

현재 강진 청자 공방들은 ‘강진청자협동조합’이나 ‘고려청자공예협동조합’이 있으며 비조합원인 공방들까지 모두 합쳐, 총 42개의 공방이 고려청자박물관이 자리한 대구면을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

군에서는 지난 1970년에 고려청자사업소로 시작해, 1997년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을 개관한 데 이어, 2015년에는 고려청자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해,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함께 민간요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을 위해, 지난 2015년, ‘강진군 청자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군은 고려청자박물관에서 제작하는 관요와 함께 민간요를 활성화하기 위해, ‘청자촌 신규 입주업체에 장비 지원 사업’을 통해 군비와 자부담 6:4의 비율로, 8천 8백만 원을 지원 중이다. 1개소당 사업비 2천 2백만 원까지 전기 환원 가마, 토련기, 자동 성형기의 장비 구입비 등이 해당된다.

청자촌이 아니더라도 강진에서 새롭게 청자를 생산 판매하고 있는 업체에 대해 ‘2022년 민간요 맞춤형 기계장비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자부담 50%를 원칙으로 하며 업체당 1천만 원 이내로 지원한다.

마케팅에도 힘을 싣는다. 민간요가 대도시에 전시나 판매할 경우, 부스와 차량의 임차료, 홍보비 등을 ‘대도시 전시 판매전 지방 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150만 원까지 지원한다. 

강 대표가 꼽는 공방 운영의 가장 어려운 점은 ‘유통’이다. 코로나 이후 80% 이상 매출은 줄었고, 당장 온라인 시장 개척이 절실했다. 온라인 시장에서의 핵심은 제품 홍보였고, 무엇보다 청자가 원래의 모습 그대로 소비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호소력 있는 제품 사진’이 홍보 승패의 키를 쥐고 있다. 

비색의 오묘함은 청자에 담아내기도 어렵지만, 사진으로 표현하기 더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 인근 공방 운영자들의 연령대도 높아지면서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활용에 대한 거리감도 온라인 시장 개척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이다.

강 대표는 “청자는 박물관에서 나와 적극적으로 관객 혹은 소비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품 개발이 관건이다. 인스타를 통해 외국인들이 DM을 보내 문양의 독창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국경을 건너가면 특별한 매력을 갖게 되고,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강 대표는 온라인 판로 개척을 통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SNS를 통해 그리스, 러시아, 멕시코, 대만 등에 상감청자를 판매 중으로, 아직 매출은 소소하지만, 해외 도예 작가들과의 협업도 논의 중이다.

이와 함께 청자를 기반으로 하되, 강진을 대표할 수 있는 기념품 숍을 구상 중이다. 여수나 부산, 제주도 등의 특이한 기념품 숍들이 인기를 끌며, 인근 상권이 살아나듯이, 강진을 알리고 강진을 상징할 수 있는 다양한 굿즈를 개발 판매해, 청자박물관 일대의 모든 공방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

강 대표는 청자를 배우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동생과 저는 부모님이 일궈 놓은 기반에서 시작했음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하기에는 성과도 늦게 나오고 큰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지만, 그 긴 여정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나온 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전했다. 

또 강보람 씨는 “청자를 구워 제품이 나왔을 때, 최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 나왔지만, 그 결과가 독창적이고 상상치 못한 제품일 경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강 대표의 마지막 바람은 ’청자‘ 하면 떠오는 곳이 바로 ’강진‘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의 명성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민간요 공방들의 노력은 물론, 군의 지원이 함께 결합할 때 가능한 일이다. 

천년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오늘의 강진 청자로 살려내는 청년들의 도전이 있어, 강진 청자는 100년 후에는 상상의 영역을 넘어선 다양한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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