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강진읍에는 두 개의 옥샘이 있었다. 한글로 같은 이름이지만 한자로는 표기가 다르다. 하나는 구슬옥자를 써서 玉샘이었고, 하나는 감옥 옥(獄)샘이다. 구술옥자를 쓰는 옥샘은 지금의 보은산 약수터다.

윤순학 전 군청 기획실장이 본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1981년 간행된 ‘내 고장의 전통’이란 책자의 ‘읍민의 낙원 북산공원’란에 보은산 약수터가 나온다.

‘산허리를 두루 감고 기어오른 새 길을 밟으며 산마루를 넘어서면 조그마한 옹달샘이 있으니, 이 샘은 그 맑기가 옥과 같아서 옥샘이라 부른다’라는 설명문이 있다. 지금은 그냥 보은산 약수터라 부르지만 옥샘이라는 고유명사가 있었던 것이다.

옥샘 앞을 지나는 길은 원래 읍내에서 고성사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성사를 오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물로 목을 적셨다.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으니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의 옥샘, 그러니가 옥(獄)샘은 지금의 고내마을에 있었다. 물이 깊고, 맑고, 아주 깨끗했다고 한다. 왜 옥샘으로 불리게 됐을까. 조선시대 근처에 감옥이 있었다. 지금의 아름다운교회 자리다.

그러니까 지금의 군청이 원님이 있는 동헌이었고, 동헌에서 죄인을 다루면 가까운 감옥에 가두었으며, 이 감옥에 있는 죄인들이 마시던 샘이라고 해서 옥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옥(獄)샘은 강진극장 앞에서부터 삼세의원 골목 사람들, 강진약국 뒤 마을 사람들까지 100여호 이상의 세대가 이용했다.

엊그제 옥(獄)샘을 구경하러 고내마을에 갔더니 샘이 3년전에 없어졌다고 했다. 골목길을 정비하면서 10m가 넘은 깊은 샘을 메우고 포장길을 냈다. 샘은 20여년동안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사용하지도 않은 샘물을 모양만 지키면서 보존하기도 어려웠을 법하다.    

1950년대만 해도 강진읍은 샘이 대세였다. 본지에 글을 쓰는 김병균 목사의 회고에 따르면 고내 옥샘과 함께 동문안에는 동문안샘, 탑동에는 영랑생가 앞에 탑골샘이 있었다. 서문안은 서문안 회관쪽에 우물이 있었다.

신성에도 영당 쪽에, 평동에도 큰 우물이 있었다. 지금은 동문안샘과 탐골샘만 남아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식수로는 사용 못한다. 옥샘이 사라진 것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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