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무안 세발낚지 ‘질근질근’씹는다

영암과 무안 일원에서 잡힌 세발낙지가 유명한 이유는 낙지를 통째로 먹는 이곳 사람들의 식습관 때문이다. 통으로 산낙지를 먹는 데는 가느다란 세발낙지가 더 먹기 좋기에 그렇다.

이곳 사람들은 통마리 산낙지를 이렇게 먹는다. 꼬무락거리는 세발낙지를 산채로 집어들고서 손으로 그냥 쭉 훑어 내고는 나무젓가락에 낙지 목을 잽싸게 끼워 다리를 젓가락에 돌돌 감는다.

그렇게 낙지를 꼼짝 못하게 만든 후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머리부터 꼭꼭 씹어 먹는다. 입천장에 낙지의 빨판이 달라붙게 되고, 힘쎈 낙지다리가 자꾸 입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재빨리 잘근잘근 씹는다.

영암의 대표적인 낙지골목은 학산면 독천리다. “강호동이가 한번 왔다 가고는 정말이지 대박 나부럿어.” 이곳 토박이로 낙지호롱구이 전문점을 하고 있는 한라식당 주인 심희자(68) 할머니는 "이전엔 연포탕과 갈낙탕이 주 메뉴였는데 이젠 호롱구이"라면서 즐거운 비명이다.

특히 향토음식 소개 방송 프로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면서 F1경기가 열릴 때는 ‘호롱구이도 먹고, 자동차경주도 보고’라는 1석2조 효과를 얻어 관객 유치에도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단다. 호롱구이 손님은 연중 이어지고 있다.

“자, 이제 우리 집 호롱구이 한번 잡숴 보실래요?”

손님을 세워 놓은 채 세발낙지 자랑에 열을 올리던 심 할머니가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호롱구이를 굽기 시작한다. 식당 가득한 고소한 냄새. 아직 형체도 드러내지 않은 낙지 호롱구이가 코부터 자극하면서 식욕을 돋운다. 이윽고 냄새만 풍기던 호롱구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소한 냄새에다 윤기마저 자르르 흘러 상 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린 세발낙지에 고추장과 깨소금 양념을 듬뿍 발랐다. 양념과 낙지가 함께 지글지글 굽혀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코의 감탄이 눈으로 이동한다.
 
양념장에 살짝 찍어 낙지다리부터 벗겨 가면서 야금야금 뜯어 먹으란다. 이제는 입.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쫄깃한 구운 낙지의 식감도 일품이다. 다리를 풀어 가며 먹는 재미도 그만. 손가락도 맛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메뉴. 낙지 특유의 감칠맛이 혀끝을 사정없이 자극한다.

질기지도 않고 쫀득쫀득한, 그리고 매콤하고도 고소한 맛에 반해 어느새 체면불구하고 그저 한 마리를 더 집어들게 만든다.

“예부터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지요.” 심 할머니는 ‘무슨 낙지가 이렇게 맛있냐’는 일행 중 한 사람의 혼잣말도 놓치지 않고 즉각 끼어든다. "원래 낙지는 가을에 맛이 더 좋고, 주꾸미는 봄에 맛있다는 옛말이 있다"면서 영암 세발낙지 자랑에 해 저무는 줄 모른다.

심 할머니의 이야기는 전남에서도 영암군 미암면과 무안군 현경면, 해제면 그리고 해남군 산이면의 낙지를 제일로 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영암낙지가 시장에서 한 금을 더 받는다면서 다리가 길고 가늘고 쫄깃하기로는 최고라는 것. 그냥 슬쩍 삶아 내기만 해도 간이 저절로 맞고, 후루룩 국물째 들이마셔도 될 정도로 육질이 부드럽기 그지없단다.

“지친 소한테 낙지를 먹인다는 얘기를 들어봤어요?” 신바람이 난 심 할머니는 농사일에 지친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금방 원기를 회복할 정도로 힘을 낸다는 이야기와 자산어보 기록까지 소개하면서 낙지 예찬론을 펼친다. 영암군 홍보담당이 따로 없다.

“영암산이라야 젓가락에 다 감기지 다른 곳의 낙지는 다리가 짧아서 젓가락에 반도 채 감기지 않아요.” 그래서 심 할머니가 쓰는 낙지는 100%가 영암산. 낙지 업자가 중국산 수입낙지를 섞어 몰래 가져다주면 대번에 들통난다는 것. 중국산은 다리가 굵은 데다 뻣뻣하고 짧아서 젓가락에 감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멋지고도 기가 찬 호롱구이를 위해 심 할머니가 하는 낙지 손질은 이렇다. 먼저 낙지머리 속의 내장을 꺼내고 먹통을 제거한 다음 소금을 넣고 부드럽게 주물러 깨끗이 씻는다.

소금으로 씻는 이유는 낙지다리 흡반 속의 뻘 흙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나무젓가락 끝에 낙지 머리를 끼우고 다리 부분을 돌돌 말아서 소금과 참기름으로 밑간을 해 둔다. 애벌구이 전에 밑간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울 때 겉만 타지 않고 속까지 골고루 익게 하기 위한 것. 그 다음 석쇠로 천천히 은근한 숯불에 애벌구이를 한다.

애벌구이 한 낙지를 깨소금과 고추장 양념을 발라 뒤집어 가면서 숯불에 다시 구워 손님상에 낸다. 심 할머니집의 호롱구이는 마리당 5천원. 크기와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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