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 언론인

코로나19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면 접촉이 허용된 올 추석, 고향을 찾은사람들은 신바람났다. 4일간의 연휴까지 겹쳐 경향각지에서 활기가 넘쳐났다. 가족모임과 방문제한이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버스, 기차내실내취식도 허용됐다. 대중교통 좌석도 한 칸 띄어앉기 등이 없이 전 좌석을 운영했다. 전국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차량에 대해서는 통행료가 면제됐다.

9일부터 12일까지 연휴 나흘간 이어졌다. 코로나 블루에서 해방되는 특별한 추석임을 예고한 변화한 상황들이었다.

추석전부터 광주시내 대형마트의 식품코너는 고객이 뺵빽히 들어찼다. 카운터마다 장사진을 이뤄 쇼핑보다 계산대 대기시간이 더 길다며 불평이 터져나왔다. 광주 망월동과 영락공원묘역도 추석당일은 물론 훗날에도 성묘객이 몰렸다.

진입도로마다 극심한 정체가 빚어져 성묘를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 이전의 모습과 동일하게 보였다. 감염통제보다 방역생활수칙 준수에 초점을 맞춘 방역대책에 의해 달라진 분위기다.

하지만 요양시설은 냉냉했다. 비대면방문족쇄가 풀리지 않아서다. 만남을 포기하거나 차단막을 사이에두고 얼굴을 마주보는 안타까운 사연이 이번에도 언론을 탓다. 방역당국은 추석연휴가 끼었어도 코로나 증가세가 크지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현실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대해서는 대면 방문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입원 환자들이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희생을 막기위한 선한 제약조치로 이해된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추석당일 하루만이라도 대면 방문을 허용할 수도 있었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용자와 면회자의 검사결과가 안전하게 나온 경우라면 예외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방역당국이 유행이 재확산하더라도 감염 통제보다는 생활방역 수칙 준수원칙을 세운점을 주시했다.  선별적으로 통제를 해제해주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때문이었다.

그런 대안이 제시됐더라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대면 상봉에 적극 동참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족들은 추석명절방문때 한사코 대면방식을 원한다. 수용자들이 사실상 정상적인 일상을 마감한거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안타까움의 발로다.

이번 추석 요양시설 비대면 방문은 유리창 너머로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는 방식만을 허용했다. 방역제재에 묶여 주말이면 몰렸던 정례 면회 관행이 깨졌다. 어쩌다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오랜 세월 생이별을 했던것과 같은 감정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의 요양소 방문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그들의 가슴속을 꽉 메우고 있다. 손을 잡거나 얼굴을 만져보는 등의 신체접촉은 본능적이다.

마치 수년간 단절된 남북이산가족상봉때면 얼싸 안고 신체접촉으로 감격의 재회가 이루어졌던 감정표현과 다를게 없는 것이다. 자유행동과 인지능력이 제약받는 환자 가족과의 만남은 남북이산가족 상봉때의 감정기저와 유사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한 감정흐름을 꿰뚫고 있을 당국이 유리문을 사이에두고 대화하는 외길 상봉방식을 고집했다. 차단막은 소음효과가 있어 큰소리를 내질러야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다. 자연스레 대화는 줄어들고 안타까움은 높아간다. 게다가 요양시설측은 면회 시간을 10~20분정도로 제한했다.

이러니 오히려 마음이 더 아프다며 이 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공간이 협소한 시설의 경우는 비접촉 면회도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아는 가족들은 비대면 접촉면회라면 아예 방문계획을 잡지않는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방문을 포기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대부분 요양시설 이용객들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정치방역이 아닌 과학방역을 천명한 정권이라서 실망이 컸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전면 불허조치가 더 현실적이라고 꼬집는다.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부인을 상시 돌보고 있는 지인의 경우는 다르다. 거리두기를 풀어버린 중추절에 갈라파고스같은 요양시설의 어두운 단면이 가슴뭉클한 스토리를 불러냈다. 중등교장출신인 70대 중반인 그의 부인은 4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된 뒤 지금껏 요양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그런 아내를 돌보기위해 자신이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냈다. 그 덕에 방역제한을 받지않고 간병이 가능하다. 그는 아내가 맞지 않은 코로나백신을 자신만 접종할 수 없다며 계속 거부해왔다.

그러다 한차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가 후유증없이 회복되기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자주한다. “요양병원 신세를 지지않는 인생이 가장부럽다. 건강은 인생의 전부다” 요양관련 시설은 인생의 마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간병활동 중이던 그도 한때 뇌졸중 전조증세가 나타나 황급히 대학 병원에 입원해 위기를 넘겼다. 하늘이 도왔는지 1개월여간의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런 후 절친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식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현미 잡곡, 채소, 과일만 먹는비건(완전채식주의자)인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와함께 틈나는 대로 탁구장에 나가 동호인들과 탁구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생활습관을 바꾼지 3개월만에 혈관계통의 이상증세가 말끔히 사라졌다. 식생활을 바꾸고 운동을 가미한 것만으로 건강한 신체로 돌아선 것이다.

요양병원신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람의 패턴과 같은 생활습관형성으로 난치병을 이겨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주변에 널려있다. 요양시설수용을 필요로하는 만성병과 전염병 확산 시대는 획기적인 식생활의 변화를 요구한다. 70대감동스토리는 전문가들의 기준에도 밀리지않는 시대에 부응하는 생활방식의 정형이라고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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