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만에 다시 찾은 대구면 천지개벽이네”

청자재현사업을 추진을 시작했던 이용기 군수가 해남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고 나서 정채균 군수가 강진군수로 부임했다. 나는 청자 재현이 강진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업을 누구보다 추진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이용기 군수가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되면서 적지않은 걱정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일반적으로 군수가 바뀌게 되면 준비중이던 사업이 취소되거나 변경되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부임한 정채균 군수도 문화와 예술분에 이어서 관심이 많았고 강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정 군수는 청자재현사업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이전에 세웠던 계획을 변경없이 그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해주었다.

이때 정 군수는 사업비 500만원을 세워주었는데 청자재현 사업을 위한 준비작업에도 부족한 예산이었다. 이때 당시 청자를 만들기 위한 장비 몇 개를 구입하면 끝나는 금액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청자재현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나섰다.

내가 직접 벽돌을 구해서 쌓기도 했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직접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등 건물을 짓기 위해 나섰다. 이때 작업공간이 현재 고려청자박물관 1호가마가 있는 바로 옆 부근이었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장소가 되어있다.

나의 이런 헌신적인 모습을 지켜본 강진군은 감동을 받았는지 추가로 5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주었다. 사실 건물을 짓기 이전 1호가마 옆에는 28평정도 규모에 작업공간이 있었다. 작업장은 허름해서 대나무를 이용해 비닐하우스 형태로 임시로 만들어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강풍에 날아가버렸던 상태였다.

이 작업공간 바로 옆에 있는 청자가마는 1977년 만들어졌다. 이때 6월경 기공식이 개최됐는데 강진에는 당시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과 고건 전남도지사 등이 강진을 찾았다. 이때 기공식이 진행됐고 그해말 1호가마가 완성돼 그이듬해 청자재현을 해내는데 성공했다.

이때 강진을 찾았던 김성진 장관과 고건 전남지사가 십여년전 오랜만에 강진을 다시 찾았다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김성진 장관은 2004년경 장흥의 보럼포럼에 참석했다가 청자재현사업을 위한 가마 기공식때 찾았던 대구면을 찾아왔다.

김 장관은 1977년 기공식때 강진을 찾은 이후 이때 거의 30년만에 다시 찾은 것이었다. 77년당시에만 하더라도 청자촌 주변은 건물하나 없이 허허벌판이었고 초가집만 몇채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돌아갔던 김 장관이 30여년만에 다시 찾은 대구면 청자촌 일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김 장관은 오랜만에 나를 찾아와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장관은 77년 기공식때 행사를 끝내고 떠나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김 장관은 그때 차에 타고 창문을 내려 나를 바라보며 “앞으로 이땅을 지키고 살아갈 사람은 당신이요. 청자재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시오”라는 말을 전했다. 나는 이 말에 감동을 받았고 아직까지 기억하며 청자재현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은 강진 청자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장관외에 당시 도지사였던 고건 지사도 2006년 무렵 강진을 찾았다가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이때 고건 지사도 기공식 당시 모습을 상상했다가 지금의 청자촌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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