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아름다운 모란꽃 피어나는 고향 너무 그립네요”

1959년 부터 성요셉학교
음악교사로 13년간 근무
무용과 가야금 등도 지도

정문식 시인의 시에
곡 붙인 ‘강진찬가’ 작곡
매년 향우회 행사때 지휘

강진찬가를 작곡한 김혜경 선생이 자택 인근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진찬가를 작곡한 김혜경 선생이 자택 인근에서 포즈를 취했다.

 

“비파산 아침해 솟아오르면~”으로 시작하는 ‘강진찬가’는 강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곡이다. 이 곡은 지역출신 정문석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여서 발표된 곡으로 재경강진군향우회 행사때면 성요셉총동문회의 합창단의 주도로 자주 불렸다. 바로 이 노래의 작곡가가 바로 전 성요셉여고 교사로 활동했던 김혜경(85) 선생이다. 

김 선생은 서울 화곡동에 있는 자택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여전히 모란꽃을 가꾸며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그녀의 하루일과는 보통 성당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서울 화곡2동 성당에 40년이상 다니고 있다.

성당에서 성가대의 지휘를 맡아 활동하고 있는데 벌써 30년을 넘어섰다. 젊은 시절 성요셉여자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 등을 가르쳤던 것처럼 최근에도 성당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 선생이 다니고 있는 성당의 사람들은 대부분 ‘강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이유는 바로 김 선생이 항상 성당 신도들에게 강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항상 강진에 대해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신도들에게 전하고 강진의 맛있는 음식과 볼거리 등을 전하고 있다. 또 성당의 성가대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강진을 방문하는 등 강진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또 김 선생은 10여년이상 ‘천상의 메아리’라는 성당 동아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동아리는 서울의 여러 성당을 다니며 음악 피정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로 활발하게 활동해왔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에는 활동을 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다.

80세가 넘어서면서 건강관리를 위해 무리가 가지 않는 실내체조를 즐겨하고 있다. 실내에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함께 운동을 하며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오고 있다.

김 선생이 20대시절 성전중학교에 근무하던 당시 모습이다.
김 선생이 20대시절 성전중학교에 근무하던 당시 모습이다.

 

그 외에 김 선생은 시간이 날때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집 뒤뜰에서 꽃을 가꾸고 있다. 그가 뒤뜰에서 키우는 꽃은 영랑 시인하면 떠오르는 모란꽃이다.

모란꽃을 키우는 이유도 젊은 시절의 추억과 아름다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마음이 담겨있다. 모란꽃이 활짝피는 계절이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해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 등에서 보내며 자랑을 하기도 한다.

김 선생은 강진읍 남성리에서 태어났으며 20~30대 젊은 시절 성요셉여자고등학교와 성전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특히 성요셉에서는 22살부터 음악교사로 근무를 하기 시작해 33살되던 해까지 약 12년간 근무하며 아이들에게 음악을 비롯한 무용 등을 지도하는 등 지역의 여성인재를 길러내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녀는 잠시 성전중학교에서 6개월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이때 예체능분야에 취약했던 면단위 학교를 배려해 특별초청 교사로 근무했던 것이다.

그녀가 교사로 근무하던 당시 음악외에 무용이나 가야금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때 김 선생은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매년 방학이 되면 국립국악원에 가서 직접 한국무용과 발레, 가야금 등을 배우며 아이들을 지도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교사로 유명했다.

그 이후 결혼을 하게 되면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게 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혼후 김 선생은 서울에 자리를 잡고 피아노교습소를 45년간 운영해왔다. 피아노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협회로부터 음악지도자상, 서울 강서교육청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김 선생의 여러 가지 이력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강진찬가’라는 노래를 작곡한 일이다.

지난 2003년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던 지역출신 정문석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 행사에서 그녀는 정 시인의 작품에 자신이 곡을 붙여 완성한 ‘강진찬가’라는 곡을 처음 발표했다.

아직도 그녀가 즐겨부르고 있는 노래중 하나로 정 시인이 강진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해 가사를 보고 있으면 고향 마을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라 자주 부르곤 한다.

이 노래가 발표된 이후 재경강진군향우회 행사가 있을 때면 성요셉여고 총동문회 회원들이 직접 이 노래를 부르고 김 선생이 지휘를 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연례행사처럼 매년 향우회 행사때 자주 불렸다.

김 선생은 “아직도 모란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영랑생가와 고향마을이 눈에 선하다”며 “앞으로도 강진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강진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돕고 싶다”고 말했다.   /오기안 기자


김혜경 전 성요셉여고 교사

•1938년 강진읍 남성리 출생
•1959년 성요셉학교 교사로 근무
•2003년 ‘강진찬가’ 발표
•2012년 자랑스런 강진읍인상 수상


군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강진은 예향의 도시”

내 고향 강진은 예향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림과 시로 유명하다. 또한 강진은 풍류를 알고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진읍에는 멋진 시를 썼던 영랑과 현구 시인이 있었고 조선시대로 거슬로 올라가면 학문을 갈고 닦았던 다산 선생의 흔적도 남아있다. 이것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최고급 고려청자를 만들어 왕실에 진상했던 곳이 바로 강진이다.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뺏겼지만 세무서도 있었고 강진의료원이라는 군단위에서 보기드문 종합병원도 있다.

고향 후배들은 예향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고향 강진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서울에 와서 살다보니 내 고향 강진처럼 아름답고 문화와 예술이 발전한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앞으로 후배들은 강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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