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동, 조산, 영락이 모여 영동마을이 됐네

 

강진읍에서 완도방면으로 내려가다 계라리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들녘의 동쪽끝에 작은 마을이 있다.

다시 오른쪽을 보면 옛 도암북초등학교 바로앞에 또 마을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 좌측을 보면 냇가옆에 몇 채의 집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들 세곳의 마을이 바로 영동마을이다. 세 개나 되는 작은 마을을 합해서 만든 행정마을이다 보니 다소 낯설기도 하다. 마을간 거리도 가깝지 않다.

양유동과 조산과는 거의 1㎞ 정도가 떨어져 있고, 양유동과 영락의 거리는 이보다 조금 멀다. 대신 조산과 영락은 작은 야산을 두고 마을이 나뉘어 있다.

조산마을이다
조산마을이다

 

각각의 마을에는 고유의 이름이 있다. 동쪽에 있는 영동마을 1반은 조산이라고 한다. 마을뒷산이 낚시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조산마을 남쪽에 있는 영동마을 2반은 영락(永樂)이란 명칭으로도 불리운다. 길게 향략을 누린다는 뜻으로도 풀이되고 마을앞 시냇물의 모양이 긴 악기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는 설도 있다.

영동마을 3반은 양유동(楊柳洞)으로 불린다. 예전에 마을에 수양버들이 많아 부른다는 이름이다. 영동마을은 3반에 마을회관이 있다.

영락마을이다.
영락마을이다.

 

강진군이 발행한 ‘강진군 마을사 도암면편’에 따르면 제주고씨와 해남윤씨, 전주이씨등이 1800년대 중반부터 차례로 입촌해 마을이 형성됐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성씨중에서 가장 먼저 입촌한 제주고씨는 문충공파 중시조인 말로(末老)로부터 26세손인 고현징(1840~·1901)이다. 그가 해남 문내면에서 영동마을 양유동에 입촌하면서 제주고씨가 많이 살게 됐다고 한다.

양유동쪽에 있는 해남윤씨 제각이다.
양유동쪽에 있는 해남윤씨 제각이다.

 

북초등학교를 끼고 있던 양유동(3반)은 1999년 학교가 폐교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앞 마을로서 그런대로 아기자기함을 누렸다.

마을에 작은 가게들도 몇 개 있었고, 자취나 하숙하는 선생님들도 있어서 마을이 제법 시끌벅적 했었다. 학생수가 한때 500명에 달했으므로 그럴만도 하다.

또 마을 주변이 해남과 완도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마을을 거쳐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양유동에 참샘이 있다.
양유동에 참샘이 있다.

 

양유동에서 지석리로 넘어가는 도로의 작은 언덕에 고개돌려 봐야 할게 있다. 차를 몰고 지나가버리면 보이지 않지만 전남도민속자료 제 28호인 영모당(永慕堂:1687년에 건립된 해남윤씨 문중제각)입구 부근에 작은 집터가 보이고, 이곳을 살피다 보면 작은 샘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참샘(寒泉)이다. ‘전설의 고향’에 나왔던 명물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일대를 한천동이라고 부르고, 샘이 있는 지점을 참샘이라고 부른다.

옛날 사람들은 영동일대를 모두 참새미라고 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샘 옆에는 집이 두채나 있었다. 그 집들은 지금은 폐허가 됐으나 샘은 지금도 살아서 물을 품어대고 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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