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잘타라, 막걸리를 잘 마셔라… 또 한가지는

막걸리는 농촌에서 공무원들과 농민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중요한 수단이였다.
70년대 자전거가 필수, 씨암탉 잡아주는 이장도 많아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막걸리도 잘마셔야

70년대 공무원이 되면 세가지를 잘하라는 말이 있었다. 첫째는 자전거를 잘 타라, 둘째는 막걸리를 잘 마셔라, 셋째는 거짓말을 잘 해라. 여기서 거짓말을 잘 하라는 것은 선의의 거짓말을 적당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80년대 초반까지 자전거는 공무원들의 필수품이었다. 각 마을에 출장을 가려면 자전거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였기 때문에 자전거를 얼마나 잘 타느냐에 따라 업무성과가 달라졌다. 그래서 젊은 공무원이 부임해 오면 면사무소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마을을 담당마을로 지정해서 자전거 타기의 달인으로 만들곤 했다.

마을이 먼 곳은 자전거를 타고도 한나절이 넘게 걸린 곳이 많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하고 10시에 출장을 나가면 영락없이 점심때 마을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마을 이장이 담당 공무원에게 따뜻한 밥을 해서 먹였다. 각종 정보를 제공해주고 때에 따라서 마을 숙원사업도 풀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들리는 공무원은 마을의 중요한 손님이였던 것이다.

“씨암탉을 잡아주던 이장들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막걸리 몇사발은 먹어야 서로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게 되니까 술도 꽤 먹었지요. 담당공무원이 왔다면 마을의 이런저런 분들이 이장집으로 모였기 때문에 작은 잔치가 열린날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정이 넘치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중반으로 넘어서면서 이런 문화가 사려졌다. 오토바이가 나온 후 굳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두어시간 걸리던 마을방문이 30분내로 단축됐다. 또 전화보급이 일반화되면서 공무원들이 마을에 갈 일도 많지가 않았다.

농촌에서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공무원을 잘 하려면 막걸리를 잘 먹어야 하는 것도 기본이였다. 요셋말로 막걸리는 소통을 의미했다. 영농철이면 제때 모내기를 하고 제때 풀베기를 해서 제때 수확을 하는게 큰 숙제였기 때문에 농민들과 막걸리를 나누며 친밀함을 유지하는게 필수적인 일이였다.

“종종 먹걸리를 너무 좋아해서 탈인 사람도 있었지만 주민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막걸리를 주고받는 것 보다 좋은게 없었습니다”

요즘에도 면단위에서는 술을 잘해야 할 때가 많다. A면에서 면장을 역임했던 한 공무원은 “보통 오후 3~4시가 되면 술시가 시작될 때가 많다. 어르신들이 술잔을 건네면 거부할 수 없는게 아직 농촌 인심”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적당한 시기에 거짓말도 잘해야 했다. 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최대과제는 식량자급이였다. 이때문에 농사일정과 관련 철저한 보고를 일상화하고 있었다.

‘군동면 풍동마을의 모내기가 26일 60%, 27일 70% 진행됐음하는 식으로 매일같이 보고를 받았다. 이럴 때는 적당한 요령도 필요했다.

28일에는 80%가 될 수 있는 것인데 모내기가 약간 지연됐다고 해서 굳이 ’79%‘ 하는 식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해서 온 동네가 시끄러울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정말 농사일정이 잘못되면 온동네가 시끄러울 때였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