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희/ 칠량면사무소

옹기배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돛대가 3개가 있다. 허리돛대는 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돛으로 배의 뒤에 설치되며 순풍을 받고 나갈 때 유용하다.

이물돛대는 배 가운데 있는 돛대로써 앞바람이나 측면바람을 받는 경우에 유용하다. 야후돛대는 배의 앞에 설치되는 작은 돛인데, 배의 방향을 바꿀 때 유용하다.

치(키)는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타이며, 호롱은 배가 정박 시 닻을 올리고 내리는데 사용되는 구조물이다. 호롱은 원통형 축에 ‘+’로 손잡이가 끼워져 있어 4명이 돌릴 수 있다.

요두막은 갑판을 총칭하는 것으로 허리칸과 이물칸을 덮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선내의 선적 공간이 부족할 경우 옹기를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옹기를 싣고 내리는데 편리하게 탈착이 가능하며 상부의 물이 바깥쪽으로 흘러가도록 경사지게 만들어 진다. 갑판 아래에 있는 공간은 크게 4개로 나누어 진다. 방장은 선원들의 잠자리 공간이다. 허리칸과 이물칸은 옹기를 싣는 화물창이다. 투시칸은 취사 공간이다.

다음으로 옹기에 탑승하는 선원의 명칭과 그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 배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옹기배는 보통 3~4명이 배를 탄다. 옹기배에 타는 선원은 돛잡이, 화장, 웃동무, 사공이 그들이다. 이들은 배가 항해할 때 사공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주된 역할은 나눠져 있다.

강진 봉황 옹기배는 강진 인근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옹기를 팔았다. 그러다가 6·25 전쟁 후에는 부산까지 그 판로를 넓힌다. 피난민들이 부산에 모여 있어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산까지 거리는 멀었지만, 항로는 모두 섬으로 싸여있기 때문에 안전한 뱃길이었다. 또한 부산까지 가는 길에 있는 섬들도 옹기 판매가 잘되는 좋은 시장이었다. 이후 제주도까지 그 판매처를 넓히게 된다. 당시 제주도에 가기 위해 큰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9년 경에 옹기배가 풍랑으로 표류를 하다가 제주도에 도착하게 된 일이 있었다. 이때 칠량 봉황 옹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3배 정도의 이윤을 남기게 된다.

이로 인해 제주도 항로가 개척된다. 제주도 항로를 개척하는 등으로 한창 인기가 높던 옹기는 플라스틱 제품이 등장하면서 인기가 사그러들게 되고, 1985년을 기점으로 옹기배는 사라지게 된다.

무엇보다 옹기배를 논할 때 사람을 중히 여긴 점을 놓칠 수 없다. 옹기배 사공은 처음가는 섬이나 마을에는 배를 육지에 바로 정박하지 않았다. 배를 바다에 정박시킨 후 육지에 내려 인근 주민들에게 바다의 지형이나 배를 정박하기 좋은 곳의 정보를 먼저 파악했다.

이는 혹시도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 사공의 행위는 물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함이지만, 배와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 생각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져 있다. 옹기배를 운항할 때 살아 있는 사람들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마음도 함께 표현한다.

옹기배는 전에 살펴보았던 옹기와 같이 투박한 매력이 있는 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옹기배는 제주도까지 나아가 이윤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하는 사람냄새가 나는 배이기도 한 점에서 말이다. 이번 기고로 필자가 구상한 칠량 봉황 옹기에 대한 연재 기고를 마감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