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학/ 전 강진군청 기획홍보실장

화사한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수런거리는 소리가 예서제서 들려오는 듯하다. 예전에는 영춘화, 개나리가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온 뒤 진달래 목련 벚꽃 모란 철쭉꽃이 그 뒤를 이어 순차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탓인지 근자에 들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노(怒)한 옥황상제께 제물을 준비하여 제단에서 제(祭)를 올렸을 법하다.

며칠 전 칠량에서 강진읍내로 오는 도중 삼신마을에 이르자, 금곡사 방면에서 하얀 백룡(白龍) 한 마리가 일봉산을 휘감으며 까치내재를 오르고 있다. 금곡사 입구에서 방향을 틀어 북쪽 산허리를 안고 돌아 행여 여의주를 놓칠세라 꿈틀대며 꼬불꼬불 길을 기어오르다 까치내재 꼭대기에서 승천하는 모습이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식목일 즈음하여 심었던 벚나무가 어느덧 장년이 되어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트린 채 꽃을 토해내는 모습이 흡사 하얀 백룡이 승천하는 형상이 되었다. 아름다운 벚꽃을 감상하려면 발품이 제격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금곡사 산책길에 나섰다. 평년에 벚꽃 필 때면 비가 내리곤 했는데, 올해는 벚꽃이 오랫동안 피어있는 모습이 장관(壯觀)을 이뤘다.

벚꽃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매년 그래왔듯이 음식을 장만하여 까치내재에 이르자 곳곳에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꽃비를 맞으며 맛있는 음식과 함께 아름다운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우리 일행도 그들 틈에 끼어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상쾌해야 할 몸이 무언가 짓누르는 듯 개운치 않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벚꽃놀이를 마친 뒤 작천저수지 부근에서 최근에 개설된 벚꽃 산책로와 포장된 도로 갓길을 무려 16㎞ 걸었던 걸까.

오후가 되자 간지러운 두드러기 현상이 온몸에 나타난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음식을 잘 못 섭취했던지, 아니면 꽃가루, 약물, 세균 등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음식에서 반응이 왔지 않을까 싶다. 두드러기가 생기다보니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소금을 온몸에 뿌리며 간지러움을 해소시켰던 생각이 떠오른다.

할머니께서는 두드러기를 낫게 하는 방법이라고 하시며, 옷을 벗긴 채 칙간(厠間,재래식 화장실)에 데려다 놓은 뒤 챙이(키,곡식 등을 까불러서 쭉정이․티끌․검부러기 등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데 쓰는 용구)를 머리에 씌우고 온몸에 소금을 뿌린 뒤 주술을 하시면서 부지깽이로 쓸어내었다.

부지깽이가 두드러기 부위에 닿을 때면 간지러움이 일시 멈추는 듯했다. 오줌싸개 아이들에게도 챙이를 씌우고 이웃집에서 소금을 얻어오게 하는 방법과 유사했던 것 같다.

이뿐이랴. 농경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못입고 못살던 시대, 토템이즘과 샤머니즘은 고난으로 점철된 일상생활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유일한 대안이었으리라. 우리 선조들은 이웃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근본삼아 고난을 이겨내며 모질게도 애면글면 살아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군 유일무이한 칠량면 중흥마을 벅수(장승)를 들 수 있다.

1996년 초겨울 강진군마을사 칠량면편 원고를 쓰기 위해 흥학리 중흥마을을 찾아 자료 수집을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을사는 선현들의 발자취와 마을의 민속자료를 발굴 기록하여 내일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도록 읍면별로 순차적으로 편찬하는 사업이었다.

중흥마을에 당도하자 동네 어귀에 세워진 4기의 벅수(장승)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은 제주도 하루방 말고는 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은 우리 군 지역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주수운 어르신으로 기억되는데, 벅수와 북두칠성 형상을 하고 있는 당산나무, 그리고 선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벅수는 중흥마을에서 치산마을(옛 칠량동초등학교)로 가는 길 양옆 가장자리에 액운을 몰아내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마을 수호의 의미로 세웠다고 한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0여기의 장승이 세워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1987년 최윤재씨가 만들어 세웠다는 4기의 장승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매년 정월 14일 저녁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당산나무, 벅수, 선돌에 금줄을 치며 제를 지낸다.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지만, 미래에도 행사를 이어갈지는 미지수이다.

산업사회로의 변화와 함께 글로벌시대가 도래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 등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각종 질병의 원인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보를 파악하는 시대이다.

특히 첨단과학이 발달하면서 질병퇴치에 따른 신약이 개발 보급됨에 따라 이제는 원시적 종교의 한 형태인 샤머니즘에 의한 질병치료 따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옛 어르신들이 행해온 주술적 치료방법이나 그에 따른 행위 따위를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벅수가 있는 마을로 널리 알려진 장승의 고장 중흥마을에 벅수를 깎아 세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 계승이 절실함의 이유이다.

샤머니즘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전통을 잇는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목공예 장인(匠人)과 협업하여 매년 장승세우기 행사를 정례화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관련기관에서 행․재정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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