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평선/ 철학박사

남녘의 봄을 알리는 홍매가 피었단 소식을 듣고, 지난 3월 27일 새벽부터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서기산 자락에 자리한 사은정이다.

해마다 사은정에서는 홍매가 필 때면 상매연(賞梅宴)을 개최한다. 전국의 문인들이 모여 시를 읊고, 잔치를 벌이는 행사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에 이어서 행사 규모가 축소돼 인근 문인들만 모여 조촐하게 치러졌다.

행사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사은정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백꽃은 이미 피었다가 지고 있고, 목련꽃은 속살까지 하얗게 드러내놓고 있는데, 정자 한 켠에서는 고결한 향기를 내뿜으며 월출매 한 그루가 온통 붉은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상매연 행사 책자를 보니 매화에 대해서 사진과 함께 잘 설명되어 있었다.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봄의 전령사이자 향기로운 꽃 중의 으뜸으로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조선에서 매화를 사랑한 선비로 퇴계 이황을 꼽는다.

무려 107수가 넘는 매화시를 지은 퇴계는 단양군수 시절 두향이라는 기생과 유명한 러브스토리를 남겼다. 이렇게 매화로 맺어진 사랑이야기가 최근에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퇴계는 시 속에서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표현하였는데, 매화의 이미지가 잘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행사 시간이 되자 국민의례와 함께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내빈들이 소개되었는데, 이승옥 강진군수, 위성식 강진군의회 의장, 배홍준 강진군의회 부의장, 김명희 강진군의회 의원, 김동진 강진향교 전교, 박진규 성균관유도회 강진지부 회장, 김상윤 전 강진군의회 의장, 문덕근 전 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등이 참석했다. 지역적으로는 영암 4명, 안동 1명, 광주 1명, 강진 20명이며, 서로 상읍례를 마친 다음 주자의 백록동규를 낭독하였다.

상매연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1부 행사는 이승옥 군수를 시작으로 직접 지은 한시를 돌아가며 낭독했다. 절반쯤 낭독하였을 때 1부 행사를 마치고,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다.

손님들은 미리 준해 둔 다과를 먹고, 주인은 술을 한 순배씩 돌렸다. 그리고 2부 행사에 앞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윤현주 춤꾼이 한량무를 추었다.

하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흰 나비가 춤추는 듯하였고, 백학이 송림 위를 나는 듯이 곱고도 아름다웠다. 한량무가 끝나고 나머지 시인들이 시를 낭독하고 상매연 행사가 끝났다.

김득환 사은정 주인은 요즘 보기드문 선비이다. 특히 부모님의 묘소 앞에 사은정을 짓고, 평생 부모 곁을 지키고 있는 효자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오갈 곳 없는 나그네 신세였던 사람을 새로운 유림의 길로 안내를 해주었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유림활동을 같이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같이할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아무리 멀어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상매연과 같은 풍류문화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흥어시(興於詩), 입어예(立於禮), 성어락(成於樂)”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 “시(詩)에서 흥기시키며, 예(禮)에서 서며, 악(樂)에서 완성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비들은 수행방법의 하나로 시를 읊고, 유상곡수를 즐기며, 춤추며 노래하는 풍류문화를 즐겨왔던 것이다.

상매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막 피어나고 있는 봄꽃들을 보면서 이번 상매연과 같은 선비들의 훌륭한 풍류문화를 지키고 있는 유림들이 있는 한, 저 봄꽃들처럼 사회도 풍류문화의 꽃을 피워 내리라는 희망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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