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영/ 성균관대학교 유교철학박사

내가 군자서원과 인연이 된 것은 7~8년 전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 유교아카데미교육 강의를 하면서 부터이다. 선비는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들을 만났다.

디지털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선비를 만났다면 그닥 신뢰가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육문화의 저변에는 오랫동안 흐르고 있는 사람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세상을 밝게 열겠다는 선비정신이 깔려 있다.

공자(孔子)는 선비를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 군주의 명을 잘 처리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논어』 「자로 20장」)’라고 하였다. 즉 선비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며, 외교력과 효성스럽고 공손하며 신의가 있는 사람으로 지금의 엘리트에 해당된다.

공자는 2500년이 넘도록 우리들의 스승이자 마음의 벗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적 공백과 수만리의 공간적 거리와 상관없이 지금도 군자서원에 속한 여러 유림어르신들은 여전히 공자를 닮아가기 위한 노력과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군자서원은 200년 전 1820년에 도내 유림(儒林)과 후손들의 발의(發議)로 유항재(有恒齋) 김량(金亮, 1569~?), 절효(節孝) 김호광(金好光, 1600~ 1624), 행정(杏亭) 김신광(金伸光, 1608~1666)등 삼현(三賢)을 소목(昭穆)으로 배향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약 10년 전부터 서원의 3대 기능인 제향과 교육, 그리고 장서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여 유교아카데미 교육과 서원 활성화 교육, 청소년 인성교육 및 서원 음악회 등의 행사를 꾸준히 시행해 오고 있다.

군자서원은 강진의 학문 중심지이자 선비문화의 산실로서 선비의 멋과 풍류, 그리고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면면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저 오랜 세월 비바람을 버텨온 ‘오래된 옛 집’으로 머무른 것이 아니라, 유림어르신들의 깊은 학문과 효심, 헌신적 사랑과 배려, 올곧은 선비정신과 굳건한 애국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비는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특히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구현하는 인격체를 가리킨다. 선인들은 선비의 인격적 조건으로 생명에 대한 욕심도 초월할 만큼의 수양의 덕을 요구했다.

그래서 선비는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학문과 수련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비는 독서인이요, 학자인 것이다. 선비가 배우는 학문의 범위는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일의 마땅한 도리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선비는 학문을 통해 지식의 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도리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인격적 성취에 목표를 둔다. 특히 군자서원 마당에 그려져 있는 상읍례도(相揖禮圖)를 보고 사제 간의 예(禮)를 돈독히 하고, 동학 간에도 예를 다하려는 선비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21세기 문턱을 넘어선 지금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로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군자서원처럼 전통서원들이 오랜 세월 속에 걸어뒀던 빗장을 열어서 서원의 그 인문적 가치가 이 시대와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깨닫게 된 동기는 군자서원의 원장님과 별유사를 비롯한 여러 유림어르신들의 선비정신의 실천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지금 우리에게 ‘옛 선비의 올곧은 기상과 두터운 덕행을 본받으라. 가난해도 청렴 하라. 의(義)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고, 어버이를 받들어 섬김에 한 치도 소홀해선 안 된다’라는 서릿발 같은 지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됨의 최종 목표가 ‘일상에서 벗어나 고원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삶을 매순간 조화롭게 살아가는데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군자서원에 신축한 ‘성심재(省心齋)’라는 교육장 이름에서도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음을 성찰한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늘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위기지학(爲己之學)하는 것으로 ‘선비정신의 재발견’이었다.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선한 마음가짐으로 수기안인(修己安人)이 실행되는 것이다. 군자서원은 나눔과 어울림의 세상을 만들어 갈 소통의 장으로서 지어지선(止於至善)의 꿈을 이루어 가는 선비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오늘날의 선비는 전문 지식과 도덕적 양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공론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욕을 없애고 자신을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군자서원의 여러 유림어르신들이 성현들의 정신을 고취하며 실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들이었다.

입시 위주의 건조한 학교교육에다 핵가족·맞벌이 부모의 온실교육,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 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바른 인성교육’은 우리가 절대로 놓치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증자(曾子)도 군자는 ‘글로써 친구를 모으고 친구로 인을 돕는다(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논어』「안연 24장」)’라고 했다. 군자서원의 교육장인 ‘성심재’를 청소년 교육장으로 활용해 선현들의 선비정신과 덕행을 가르치면 바른 인성으로 정의로운 미래 세대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울러 한국사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며 옛 선현들의 선비정신을 생각한다. 조금만 더 이웃을 사랑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까...그래서 선비정신의 부활을 통해 우리 사회와 미래 세대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더 당당한 발걸음으로 힘이 넘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