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씨 할머니는 장보고 딸이 아닐까

연동마을 앞 연지저수지 둑 아래에 허씨 할머니를 모신 작은 사당이 있다.

 
백제의 태자 왕비로 책봉된 후 그가 죽자
평생 수절했다는 허연지 할머니
허씨 할머니는 장보고 딸이 아닐까


846년 장보고가 신라 조성에서 보낸 염장에 의해 암살된 것은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책봉해서 신라정권을 빼앗으려 했다는 오해 때문이었다. 신라 무신들은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암살하고 청해진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글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장보고의 딸이다. 장보고의 가족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들이 있었는지, 딸은 몇이나 됐는지 전해오는 기록이 하나도 없다.

단지 그가 딸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딸을 왕족과 결혼시키려 했으며, 그로인해 신라조정으로부터 타도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이다. 

어려울 때 큰 도움을 받은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할 것을 약속하였는데 군신들이 반발하여 이를 좌절시켰다.

이에 신라 조정이 장보고의 동향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중 무주 출신 염장이 자청하여 장보고를 암살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장보고의 딸은 어디에 살았고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장보고의 딸은 청해진에 살았을 것이고, 아비가 역적으로 내몰려 피살되면서 갖은 핍박속에 살았을 것이다. 아니면 역적의 후손이라고 해서 아비와 함께 목이 잘리었을까.    

장흥군 대덕읍 연동리에는 이와 관련 의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연동마을 연지저수지 아래에는 작은 제각이 하나 있다. 아주 작은 제각이다. 그 안에 돌로 된 불상이 있다.

이 불상의 이름은 ‘허씨 왕비’다.
마을에 전해 오는 전설은 이렇다. 연동마을의 처녀가 백제의 태자와 혼약을 하고 왕비로 책봉됐다.

그녀의 이름은 허연지였다. 그런데 태자가 갑자기 죽었다. 연동마을 처녀는 태자가 죽은 후 혼인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후 허씨할머니의 상을 만들어 모시고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제사를 올리고 있다.

허씨를 장보고의 딸과 연관돼 있을 것이라고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은 장보고 연구 전문가 김정호 전 전남농업박물관장이었다.

김정호 선생은 한 논문에서 ‘연동마을의 허씨 할머니 설화는 장보고 딸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당시 장보고의 딸은 역적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모시지 못하고 이름을 변형했을 것이라는 것.
 
또 천관산 아래 대덕은 청해진의 관할이었고, 거리 또한 청해진의 본거지였던 완도의 장도와 뱃길로 멀지 않은 거리여서 장보고의 딸이 살았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허씨할머니의 설화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장보고 딸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인약속을 했던 태자가 백제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신라의 변형일수 있고, 태자와 혼인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장보고 딸 역사와 빼닮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연동마을 허연지 할머니의 설화가 구체화되지 못한 것은 마을사람들이 극구 그렇게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연동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허씨와 장씨가 분명히 다른데 어떻게 허씨 할머니를 장보고의 딸이라고 할수 있겠느냐“고 한결같이 반문했다. 마을주민들은 허씨 할머니를 그냥 마을을 지켜주는 당할머니 정도로 생각하겠다는 것이였다.

마을주민들이 허연지 할머니를 모시는 정성은 지극하다. 연동마을이 고향인 최순민(84) 어르신은 “어렸을 적 보면 제사를 아주 엄하게 모셨다.

제사모시는 사람은 화장실만 다녀와도 다시 목욕을 해야 했다. 정월 한달 동안은 마을사람들이 제각앞으로 지나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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