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마을… 대대로 살면서 땔감하고 물 걱정은 안했지

산골마을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 온다. 쌀쌀한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십자가가 두 개가 보인다.
산골마을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 온다. 쌀쌀한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십자가가 두 개가 보인다.

 

서기산(해발 511m) 아래 월남마을이 있다. 강진읍에서 가장 멀리 있는 마을이다. 산이 높아 겨울이 빨리 온다.

10월 중순이지만 가을은 다른 곳 보다 훨씬 빨리 와 있었다. 1960년대 초반 서산제가 축조되었다. 강진에서 담수량이 가장 많은 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가 막아지기 전 마을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 주민이 감을 따고 있다.
한 주민이 감을 따고 있다.

 

마을 하천을 따라 이 곳 산골까지 민물장어와 은어가 올라왔다. 철따라 은어와 민물장어를 잡으려는 통발이 즐비 했었다. 지금의 서산저수지 부지가 온통 논이었다.

이 깊은 산골자기에 큰 마을이 들어선 이유가 바로 그 넓은 들판 때문이었다. 마을주민들은 “저수지 만들 때 그 좋은 논들이 다 들어가 버렸다”고 지금도 아쉬워 했다. 서산저수지 축조로 인해 장어와 은어 등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마을 한 가운데로 사시사철 물이 흐른다.
마을 한 가운데로 사시사철 물이 흐른다.

 

마을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 산골 마을에 교회 철탑이 두 개나 있는 것이다. 한 곳은 1909년 7월 설립된 서산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이고 또 하나는 1950년 6.25 사변 후 세운 서산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교회다. 서산마을은 그만큼 기독교가 번성했다. 이때문인지 서산마을 출신 목사가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군내버스 기다리는 주민들.
군내버스 기다리는 주민들.

 

서산마을의 아담한 돌담길도 이쁘다. 돌담길 위로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들이 농촌의 옛스러운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여기에 산자락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물이 월남천을 따라 마을중심을 지나고 강진읍에서 가장 높다란 서기산은 가옥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월남마을은 예부터 땔감과 식수를 걱정하지 않은 마을이었다. 서기산 깊은 산골에서 언제나 땔감을 할 수 있었고, 서기산 계곡에서 물이 마르지 않고 흘렀다. 이 때문에 서산마을 사람들은 땔감장사를 많이 했다.

오래된 돌담이다.
오래된 돌담이다.

 

강진읍장에 가장 많이 땔감을 공급한 사람들이 서산마을 사람들이었다. 마을의 한 할머니는 “겨울철에는 머리에 나무짐을 이고 가다가 추우면 나무를 꺽어서 불을 피워 손을 녹인 다음 다시 나무를 머리에 이고 시장까지 걸어 가고는 했다”고 웃었다.

또한 주민들에 따르면 1945년대까지 월남마을에는 87호에 500여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는 대촌을 이루었다. 지금은 마을에 41가구 72명의 주민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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