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전남 최초로 딸기 공중재배 방식이 강진서 시작됐다

벼와 쌀귀리에 이어 강진의 특산물중 하나인 딸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금 우리가 먹는 빨갛고 도톰한 딸기는 실제로는 만들어진지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의 딸기는 우리가 오늘날 산딸기라고 부르는 쪽이 진짜 딸기이고, 현재의 딸기는 다른 식용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강진에서는 언제부터 딸기가 재배되었을까? 물론 노지에서 가정용으로 몇그루씩 심었던 것은 기록에 없지만 1957년도에 7㏊를 노지재배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하우스에서 상업용으로 재배했던 기록은 1972년 강진읍 장전과 군동면 내동에서 시작됐다. 일부에는 강진읍 장전 장영근 선생이 처음으로 하우스 재배를 했던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당시 하우스는 목재나 대나무로 하우스를 지었으며 난방은 주로 연탄이었고 보온재로는 볏짚으로 엮어 만든 섬피였다. 섬피는 햇빛이 투과하지 못하므로 아침 일찍 말아 올려두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덮어 주어야 했다.

이때 필자의 친구도 딸기를 재배했었는데 오후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 한잔씩 하다가도 해질녁이면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렇게 대나무로 하우스를 설치했던 곳은 딸기 농사가 끝나면 하우스를 철거하고 벼를 심었으며 가을이면 다시 하우스를 지어야만 했다.

1990년부터 철재파이프를 이용한 표준형 하우스가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난방도 벙커C유와 경유를 이용한 난방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여 일손을 줄여었지만 경영비가 상승하는 폐단도 있었다.

1992년에는 난방비 절감을 위하여 딸기 하우스 7㏊에 수막재배를 시범사업으로 추진하여 보온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관정의 수량(水量) 부족과 하우스내 수분 과다로 인한 잿빛곰팡이병 발생, 철분성분 축적으로 햇빛투과율 저조 등의 여려 복합적인 상황이 발생돼 몇 년 후에는 사라지고 유류를 활용한 난방기가 보급됐다.

이렇게 시작된 강진딸기는 2000년에 30.3㏊ 2005년 45.4㏊가 재배됐는데 전 면적이 토경재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진에는 딸기 전문지도사가 없어 타 시군의 전문지도사나 전남 농업기술원 담당자를 모셔와 단편적인 교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중앙이나 도단위 기관에만 농업연구사가 근무케 되어 있었던 것이 2003년도에 군단위 농촌지도기관에서도 농업연구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강진군에서는 농촌지도사를 3명 줄이고 3명의 연구사를 채용할 수 있게 정원 조정을 한 뒤 2004년도에 처음으로 농업연구사 채용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강진군을 지원했던 연구사 3명 모두 시험에 합격해 2005년부터 강진군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 강진군으로 발령받았던 직원을 보면 화훼분야 전문가, 딸기 전문가, 작물분야 전문가가들이었다.

그 중 딸기전문가가 바로 지금 원예연구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영준 박사이다. 최 박사는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영남대학교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하고 딸기 전문 연구기관에서 근무 경험이 있었던 친구였다.

그동안 강진에서 딸기 재배는 하우스에 고랑을 일구고 비닐 피복을 해서 땅에서 재배하다 보니 수확시 엎드리거나 앉아서 딸기를 수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최 박사는 평소 연구기관 근무시 연구했던 딸기 공중재배(딸기 고설식 양액재배)를 시험재배 해 보기로 하고 2007년 전남 최초로 딸기 고설식 수경재배 방법을 도입했다. 강진에서 딸기 재배에 일가견이 있다는 농가 5분을 선정하여 예산을 지원하여 고설 양액재배 시설을 설치하고 교육을 실시했다.<정리=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