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취급받던 쌀귀리 강진의 효자 농산물 됐다

국토 최남단인 강진에서 쌀귀리를 처음 재배를 했던 때가 2008년이니, 정확히 13년이 흘렀다. 처음 종자를 구해 농가에게 쌀귀리 재배를 권하고 같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가고자 고민했던 담당자로써 지난 13년의 강진군의 쌀귀리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귀리는 무엇일까? 6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기오리‘라고 해서 보리밭에서 발생하는 아주 귀찮은 잡초로 알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때는 귀리 알맹이에 붙은 수염에 물이나 침을 묻히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재미있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식용과 사료용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작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재배하고 있는 작물이다.

귀리를 강진에서 재배하게 된 동기는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지난 2008년부터 강진군은 국내 최대의 양곡업체인 두보식품(주)과 계약재배를 시작했다.

그때 두보식품은 보리와 잡곡 그리고 현미를 중심으로 양곡유통·가공 판매를 하던 업체였다.

그러는 와중에 2009년에 귀리가 슈퍼푸드에 통곡물로써는 유일하게 포함이 되고 각종 케이블TV나 종합 편성 프로그램에서 각종 홍보를 하는 등 전국적인 큰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이미 귀리는 2002년에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10대 푸드로 그 기능성이 입증이 된 곡물이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홍보의 부족으로 생산과 소비가 안 되던 시기였다.

이때 두보식품(주)의 김영헌 전무이사가 쌀귀리와 식용피 재배를 필자에게 권유를 했다. 2가지 작목 모두 기능성은 논문이나 문헌을 통해 입증이 됐다.

하지만 재배기술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음은 물론, 가공기술도 전무하고, 더욱이 직접 재배를 해야 하는 농업인들조차 귀리는 보리밭에서 뽑아내 버려야 하는 잡초로 여겼던 시절이었으며, 식용피는 잘못하면 논밭을 버릴 수 있다는 공포감까지 주는 작물이었다.

식용피는 어쩔 수 없는 가공기술의 한계로 사장이 되고, 귀리는 국립식량과학원 한옥규 박사의 도움으로 쌀귀리 품종인 ‘조양’ 재배기술을 전수 받았다. 관내 맥류 재배 기술력이 좋은 선도 농가를 중심으로 쌀귀리 재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선별된 종자가 없어 밀, 라이그라스, 보리 등이 절반이상 섞인 종자를 가지고 농사를 짓게 됐는데 겉귀리와 쌀귀리를 구분하지 못해 포장 관리가 안되는 농가가 속출하는 등 어려움은 계속됐다.

필자는 추위에 약한 쌀귀리 재배 적지는 국토 최남단인 강진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겨울철 마땅히 재배할 수 있는 월동 식량작물은 보리 말고는 귀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재배를 권장했다.

이렇게 시험재배를 추진하다가 2010년 들어와 25㏊ 면적에서 생산된 쌀귀리의 첫 수매를 두보식품(주) 주관으로 하게됐다. 농가에서 생산된 귀리는 품위와 순도는 높지 않았으나, 원료곡의 가격은 분명 보리보다 2~2.5배는 높았다.

고품질의 쌀귀리 종자 공급만 담보가 된다면 승산이 있는 작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2012년부터 정부주도 보리 수매제가 폐지되면서 강진군의 쌀귀리 재배 면적은 약 400㏊까지 늘었다.

성장통이었을까? 국내 소비량이 늘어나자 어김없이 귀리 수입물량도 늘어나 국내 가격을 폭락시키는 해가 많아졌다.

시장에는 쌀귀리보다는 겉귀리를 이용한 제품들이 판매대에 더 많이 올려지고, 다른 슈퍼 수입곡물들이 판을 치면서 쌀귀리 소비량이 감소해 강진의 쌀귀리는 정체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국내 소비량을 생각하면 못해도 800㏊ 까지 면적을 확보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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