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도 완비된’ 백금포에 농창을 짓다

강진군이 군동면 영포에 추진하고 있는 새뜰마을 사업과 관련해 현지의 농업창고가 관심을 받고 있다. 근대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활용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강진군청 이재연 학예연구사가 글을 기고해 왔다. 이번주 강진인문기행은 이재연 학예연구사의 글을 요약해 싣는다. / 편집자 주.

현재 군동면 영포에 있는 ‘강진군 농창’의 정면 모습이다. 매일신보 1933년 12월 13일자 신문보도에 따르면 그 해 8월 1일 공사에 착수해 10월 30일에 준공되었고 12월 10일 낙성식을 거행했으며, 창고의 면적은 2,028평으로 갑(甲)호 창고는 곡물 수용력 14,000석, 을(乙)호 창고는 7,600평이라 전하고 있다.
현재 군동면 영포에 있는 ‘강진군 농창’의 정면 모습이다. 매일신보 1933년 12월 13일자 신문보도에 따르면 그 해 8월 1일 공사에 착수해 10월 30일에 준공되었고 12월 10일 낙성식을 거행했으며, 창고의 면적은 2,028평으로 갑(甲)호 창고는 곡물 수용력 14,000석, 을(乙)호 창고는 7,600평이라 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는 백금포에서 거래되는 하루 평균 어물 거래량이 1~2톤 가량에 달했고, 영포마을 주민들은 지금 돈으로 100만원 정도 현금을 집집마다 갖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이였기에 당시 어획물을 저장하기 위한 냉장시설인 석빙고(石氷庫)가 백금포에 만들어 질만큼 영포마을은 해상무역의 중심이었다. 이에 따라 대형 농업창고가 건설되고, 양곡 도정공장들이 세워졌다.

신문기사를 통해 영포 창고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선 1933년 11월 ‘낙성식전 업무를 개시하는 백금포 농창’ 이라는 기사가 확인되고, 1933년 12월 13일 ‘강진군 농창 낙성식 거행’이라는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가 확인된다. 이렇듯 강진군의 일개 창고가 사진과 함께 전국신문에 비중 있게 다뤄진 것은 극히 드문 예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농업창고들은 1930년 설립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운영했으며, 쌀을 창고에 저장하는 일 뿐만 아니라 화물 운송업도 같이 했었다. 해방 후엔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1962년 조선운송과 합병되었으며, 1968년에는 민간 자본인 동아그룹에 넘어 갔다. 지금의 CJ대한통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백금포 관련 신문기사는 신문 중에서「매일신보(每日申報)」에 가장 많이 확인되는데, 그 이유는 항일 민족 언론이었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가 1910년 8월 「매일신보」로 이름이 바뀌고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발행된 신문이기 때문에 당시 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되는 농업창고 관련 기사를 당연히 많이 다루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백금포와 강진군 농업창고(농창)에 대한 기사들을 확인해 보고 정리해 보았다. 백금포 관련 신문기사를 일자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농창의 현재의 내부 모습.
농창의 현재의 내부 모습.

 

1933년 5월 8일 『동아일보』에 ‘신설농창(農倉)은 강진이 유력’ 이라는 제목으로 전라남도 농회에서 1개소의 농업창고를 신설하기 위해 예산을 세웠고, 신설 후보지로 강진, 고흥, 벌교 등지에서 맹렬한 운동을 하는 중이며 아직 그 신설 장소를 지정하지 않고 있지만, 강진 백금포에 신설하게 될 듯 하다고 전하고 있다. 첫번째로 백금포라는 후보지 명칭이 등장하며, 각 지자체들이 유치를 위해 맹열한 운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여기에서 ‘농회’라는 조직은 초기에는 민간의 비영리단체로 권농기관의 성격이였으나, 차츰 일본인 관리와 대지주가 주축이 된 타율적인 단체로 전락하였고, 1926년 3월 조선농회령이 공포되고 각종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농회’가 설립되면서 산미증식계획 등 일제의 농업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도 농회 회장은 조선총독이, 군 회장은 도지사가 임명하였고, 설립‧활동‧해산은 행정관청의 감독을 받았지만 실제운영은 일제관료와 지주들이 독점적으로 장악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금융조합연합회로 이관되었다가 1952년 민간조직체로서 농업협동조합으로 바뀌었다.

1933년 5월 10일 『매일신보』에 보면 ‘3각전(戰)을 계속하는 신설농업창고’라는 제목으로 신설 농업창고의 위치에 대하여 보성벌교, 장흥군, 강진군 3개 지역이 3각전(戰)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 공표는 되지 않았어도 전남도에서는 이미 결정하였다고 전하며, 최초에는 벌교로 결정하였으나 기초공사에 막대한 공사비가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장흥과도 가깝고 선적도 용이할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도 완비된 강진 백금포가 가장 유력하다는 기사를 내 보냈다.

1933년 5월 26일 『동아일보』에 드디어 강진으로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나타난다. ‘강진 백금포에 농업창고 신설‘이라는 제목으로 전라남도 농회에서는 강진, 고흥, 벌교에서 각각 자기지방에 신설되도록 맹렬히 운동하였지만, 5월 24일에 강진 백금포에 신설하기로 하고 시기가 결정되면 건축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들의 비상한 관심 ‘영포농창’

1933년 12월 13일 ‘매일신보에 ‘강진군 농창 낙성식 거행’이라는 제목과 함께 건물사진이 실려 있다. 당시 모습과 지금 모양이 큰 변화가 없을 정도로 원형 보존이 잘돼 있다.
1933년 12월 13일 ‘매일신보에 ‘강진군 농창 낙성식 거행’이라는 제목과 함께 건물사진이 실려 있다. 당시 모습과 지금 모양이 큰 변화가 없을 정도로 원형 보존이 잘돼 있다.

 

1933년 5월 28일 『매일신보』에는 ‘전남도 신설창고 백금포로 결정’이라면서 ‘10월 내로 준공예정’ 이라는 준공시기까지 포함하여 기사화 했다. 내용은 장흥, 벌교, 강진의 삼각전으로 문제되었던 신설농업창고는 강진군 군동면 백금포로 결정하였고, 부지 2천평에 연와조 6동 2백평  규모로 7월부터 착공하여 10월까지 준공 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1933년 7월 12일 『매일신보』에는 ‘백금포 농창 금월 중에 입찰’이라는 짧은 기사를 내보내며, 강진군 백금포 신설농업창고의 설계가 본부의 승인을 얻어 금월 말까지 입찰에 붙일 것이라고 전했다.

1933년 8월 11일 『매일신보』에는 ‘강진 백금포에 신설되는 농창’이는 제목과 ‘공사비 31,580원, 10월 말에 준공’이라는 부재를 붙였으며, 내용에는 광주 대강조(大江組)라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933년 11월 18일 『매일신보』에는 ‘낙성식 거행전 업무를 개시’라는 제목으로 창고 공사가 대부분 준공되었으므로 부근 생산자의 요망에 의하여 12월 상순에 거행할 낙성식전에 업무를 개시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1933년 12월 13일 『매일신보』에 ‘강진군농창 낙성식 거행’이라는 제목과 함께 건물사진이 비중있게 실려있다. 내용을 보면 그간의 진행경과를 자세히 실어놓았다. 지난 8월 1일 낙찰되어 공사에 착수, 10월 30일에 준공되었고 12월 10일 낙성식을 거행했으며, 창고의 면적은 2,028평으로 甲호 창고는 곡물 수용력 14,000석, 乙호 창고는 7,600평이라 전했다.

1933년 12월 15일 『조선중앙일보』에는 ‘강진농창낙성’ 이라는 제목으로 낙성식 행사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강진의 농업창고가 준공되어 지난 10일 성대한 낙성식을 거행했으며, 도지사, 산업부장, 산업과장 및 신문기자단이 참석하였다.
순천시 순천역 인근에는 순천농협 조곡지점 양곡창고가 있는데 강진 백금포 농업창고와 거의 유사한 창고건물 이다.

적벽돌로 치장된 백금포 창고에 비하면 외벽에 페인트가 칠해져 조금 초라해 보이고 규모도 더 작은 건물이지만, 외벽재료 만 다를 뿐 거의 같은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의 측면 상부에 있는 창의 위치와 크기가 거의 같고, 건물 전면 비가림 시설의 형태와 위치가 매우 유사하여 시기만 다르지 같은 건축사가 설계한 건물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이다.

2016년 순천시는 55년 된 이 창고건물을 확보해 국비와 시비 등 9억여 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실시하였고, 2017년 2월 ‘청춘창고’라 하여 개장하였다. 순천역을 통해 방문하는 젊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먹거리와 즐길거리, 볼거리 등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계획으로 진행한 결과였다.

2017년 개장 당시에는 구도심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지역 청년들에게 차별화된 먹거리와 독특한 디자인 등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성장의 기회를 부여하는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을 제공하여 전국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하지만, 순천역 주변으로 쇠락해져가는 구도심을 살리기 위해 빈 양곡창고를 활용한 청년들의 창업 장소를 만든다는 당시의 계획은 매우 파격적이고 획기적 이였으며, 그 계획을 현실화 했다는 것에 순천시 담당 공무원의 의지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강진의 백금포로 돌아와 현재의 87살이나 나이 먹은 백금포 농업창고는 순천 양곡창고에 비하면, 건물의 미적 가치가 훨씬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규모와 건립과정에 대한 스토리가 고스란히 옛 신문에 남아있어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문화재위원 중 근대문화유산을 전공한 위원과 백금포를 방문 한 적이 있다. 문화재 위원은 농업창고를 문화재로 지정 신청하면 지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최근, 우리 군에서는 백금포 농업창고를 활용하여 강진군의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육성하자는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다. 근대기에 건립된 문화유산들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것인지 어느 정도 개발하여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은 전국 지자체에서 공통적으로 있어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등록문화재 충분한 조건가져

문화재청에서는 이런 사례들 때문에 2001년 등록문화재라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근·현대 시기에 형성된 건조물 또는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 형태의 근대문화유산 중에서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히 필요한 것으로 최근에 개발과 함께 사라져 가는 개화기 이후의 근대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일반문화재와 외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부 수리를 허용하여 적극적인 활용을 촉진하고 있는 제도이다.

2001년 도입한 이래, 현재까지 총878건의 등록문화재가 지정되어 있으며, 강진군의 경우 등록문화재 제264호 ‘강진 한골목 옛담장’ 이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문화재청에서 거의 매년 보수정비 사업비가 내려오고 있어 유지 관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백금포 농업창고가 잘 정리되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많은 관광객들과 군민들이 찾아오는 매력적인 관광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백금포가 탐진강과 더불어 광대한 강진만 생태공원의 갈대밭과 연계되어 백금포의 옛 영화가 다시금 재현되길 간절히 바래본다.<글 사진=이재연 강진군청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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