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에서 평상만한 거북이가 잡혔다네

1948년 3월 24일 도암면 송학마을 앞바다에서 잡힌 거북의 모습이다. 당시 각 신문에 보도됐던 사진이다. 현재 국립수산과학원에 박제로 전시중인 거북과 동일 거북이다.사진= 동아일보 제공
1948년 3월 24일 도암면 송학마을 앞바다에서 잡힌 거북의 모습이다. 당시 각 신문에 보도됐던 사진이다. 현재 국립수산과학원에 박제로 전시중인 거북과 동일 거북이다.사진= 동아일보 제공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됐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지 모를 일이다. 벌써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있으니까 그 무더위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 맘때 처럼 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면 늘 생각나는 사연이 있다. ‘강진거북이’이다. 몇차례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연이기도 하지만 읽을 때마다 재미있고, 시원하고, 통쾌하다.

강진이란 지역에서 일어난 조그마한 사건이 이렇게 큰 서사적 스토리를 가지며 전개되고, 그 결말까지 이어진 사례는 찾기가 힘들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일개 거북이가 말이다.

그래서 이번 인문기행은 ‘강진의 거북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읽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음미하면 할수록 시원한 역사꺼리이니 올 여름 무탈하게 더위를 피하고 싶다면 강진의 거북이야기를 또 한번 검토하길 바란다.

1956년 8월 1일,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서슬퍼런 정권을 휘두르고 있을 때다. 전국의 일간지들이 부산에 있는 중앙수산시험장(지금의 국립수산연구원)에서 키우던 거북이 한 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슬퍼했고, 그동안 이 거북의 회생을 기원해 온 국민들도 거북에 애도를 표시했다.

거북이 한 마리의 죽음을 놓고 대통령이 슬퍼하고 국민들까지 애도를 표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거북은 해방직후인 1949년 3월 24일 강진군 도암의 송학리 앞바다에서 잡힌 것이였다.

지금도 부산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에 박제로  남아 있는 강진거북이. 2011년부터 전시중이다.
지금도 부산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에 박제로 남아 있는 강진거북이. 2011년부터 전시중이다.

이후 56년 8월 1일 죽기까지 7년 동안 뉴스의 중심에 있었으며, 해방 후 전쟁을 겪으면서 암울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상징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권연장에 대한 희망까지 준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거북에게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1949년 4월초 어느날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 전남 강진에서 평상만한 거북이가 잡혔다는 급보가 올라온다. 경무대는 술렁거렸다. 며칠전에는 창경원에 파랑새가 나타나 이승만 대통령을 한껏 고무시킨 적이 있는 터였다.

자유당 당직자들은 파랑새가 나타난것에 대해 ‘각하, 하늘이 각하의 취임 1주년 축하사절을 보내고 있습니다’고 아첨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파랑새에 이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그것도 평상만한게 잡혔다는 소식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평상은 2m가 조금 넘는다.

동아일보 1949년 8월 29일자에는 다음과 같이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 ‘강진군 도암면에 바위뗑이 같은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주민들은 이를 신귀(神龜. 신령스런 거북)라고 부르며 건국 1주년을 맞이한 민국의 길조를 표증하는 것이라고 큰 화제꺼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거북은 길이가 6척(2m 정도), 넓이가 오척이고 무게는 300여근(180㎏)이나 되고, 적어도 1천년 이상은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에 고무된 경무대가 한 술 더뜨고 나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날 주미대사관을 통해 ‘한국에서 잡힌 7피트(213㎝ 정도) 크기의 거북이가 세계적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아보라’고 본국지령을 내렸다. 미국대사관에서는 난리가 났다. 미국정세보고도 아니고 거북이 크기를 알아보라니...

“세계에서 가장 크다면…”

대사관에 1등 서기관으로 있던 한욱표씨가 AP통신 워싱턴 지국으로 뛰어갔다. ‘7피트짜리 거북이면 세계에서 몇 번째가 되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물었다.

AP통신 워싱턴지국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AP통신측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 서기관을 미국정부관련부처에 소개해 주었고, 미국정부는 어류동물정보전문가 ‘로라디스’여사를 만나게 해 주었다. 이 소식은 워싱턴동물원원장 ‘윌리암맨’씨의 귀에 들어갔다. 윌리암맨씨가 대사관에 공식적으로 말을 전해왔다.

“만약 거북의 길이가 7피트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세계최대 거북이다. 세계신기록이다. 아직까지 세계 제1거북은 영국런던박물관에 있는 거북으로 길이가 6.5피트일 뿐이다.”

미내무성 소속 수족관과 워싱턴동물원측은 “그 거북을 양식하려면 신선한 바닷물고기와 같은 어류를 먹여 길러야 할 것”이라는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이같은 사실은 경무대에 즉각 보고되었고, 국내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동아일보는 1949년 9월 5일자에 ‘크기 세계서 첫째, 강진거북에 미국학자논증’이란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1948년 이승만대통령이 경무대 연못에서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진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대통령 등극을 축하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사진 =국가기록원
1948년 이승만대통령이 경무대 연못에서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진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대통령 등극을 축하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사진 =국가기록원

 

이렇게 해서 강진에서 잡힌 거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 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무회의에서도 강진의 거북이가 자주 화제로 나왔다. 국무위원들이 이대통령에게 어떤 아부를 했을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곧바로 당시 어류분야 최고 권위자였던 정문기 한국수산기술협회장을 경무대로 불러들였다. 정문기 박사는 ‘참치’의 이름을 지은 어류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정문기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그해 어느 여름날 아침 이 박사가 경무대로 부르시기에 들어갔더니 큰 홀에 들어가자 마자 앉지도 않고 강진에서 잡힌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야기를 하시더라. 미국해양생물학자로부터 공인까지 받았다며 표정이 어찌나 만족스러워하시던지 다소 뻐기시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동아일보 1966년 6월 18일자>

이승만 대통령은 정 박사에게 강진으로 가서 거북을 살펴보고 어떻게 양식을 할 것인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거북을 경무대로 가지고와서 기를 것인지, 아니면 창경궁으로 옮길 것인지를 여러차례 고민하고 있었다.

정 박사가 거북을 창경궁으로 가져와 키우면 얼어죽을 것이라고 했으나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길테니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가지고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정 박사가 화급히 강진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강진까지 오는 교통이 좋지 않을 때다. 한여름에 강진까지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로 거북을 만나러 오는 길이었으니 흥분과 기대가 뒤섞였을 것이다. 거북은 도암면 송학마을 앞 바다에 죽방망이(대나무로 된 그물)에 잡혀서 갖혀 있었다.

죽방망이에 잡힌 바다거북

‘포획물’을 살펴본 결과 그 거북은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붉은바다거북(학명 Caretta caretta)이었고 나이는 400살이 넘은 귀한 거북이었다. 소문대로 1천살은 일단 아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좋아할만 했다. 거북이 나이야 전문가가 아니면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생겼다. 거북을 살핀 결과 그 크기가 평상만한 크기가 아니라 정확히 110㎝의 중대형 거북이였다. 이 정도의 크기도 적은 것은 아니였지만 흔히 평상의 길이로 통하는 2m 이상의 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7피트로 보고되어 미국대사관을 통해 세계최대 거북이라는 공인까지 받아둔 이 거북은 많은 사람들을 난감하게 했다.

그럼 1m 정도의 바다거북이 평상만한 크기로 둔갑해 경무대까지 보고되고, 경무대가 다시 미국 대사관에 특명을 보내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으로 공인까지 받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 사연이 재미있다.

1949년 가을 강진군 도암에서 큰 거북이 잡혔다는 소식이 처음 올라가자 경무대에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는 지시가 강진경찰서에 내려왔다. 도암지서주임이 거북이가 잡혀 있는 도암 송학마을 현장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때는 만조때라 죽방망이에 바닷물이 가득차 물속에 있는 거북이의 크기를 알 수가 없었다.

물이 빠지고 거북의 모습을 보려면 6시간을 기다려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기다리기가 뭐한 이 지서주임이 어장주인에게 거북이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되더냐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이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꼭 평상만 합디다” 한마디에

“꼭 평상만 합디다” 보통 강진 사람들이 큰 것을 얘기할 때 평상을 자주 예로 든다. 이 말에 지서주임이 금방 넘어갔다. 지서로 뛰어 온 지서주임은 강진경찰서에 ‘거북이가 평상만 하다. 2m는 넘을 것 같다’고 다급하게 보고했다.

아마도 지서주임은 “무지하게 커붑디다.” “징하요 징해”를 연발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어장주인의 한마디가 그대로 경무대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평상만한 크기의 거북이는 정말 엄청난 크기였고, 그만큼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1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도 큰 것이었다. 강진 ‘어장주인’의 한마디는 강진경찰서와 경무대를 거쳐 미국대사관까지 건너가 세계어류학계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강진의 이름모를 촌민이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권력욕을 농락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거북의 크기가 사실은 세계 최대가 아니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 대통령은 다소 실망했지만 거북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며칠사이 강진에서 거북 사건이 또 터졌다.

당시에는 거북의 등을 타면 오랫동안 장수하고 거북에게 술을 먹여 등에 섶을 놓아 불을 질러 바다로 되돌려 보내면 화를 면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제주도에는 지금도 거북을 죽이지 않고 술을 먹이고 섶을 놓아 불을 질러 바다로 보내면 화를 면한다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제주와 인접했던 강진은 그런 미신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령스런 거북이 잡혔다는 소문이 퍼지고 중앙신문에 특필이 되면서 ‘강진 지역주민’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계속>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