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 동국대 교수.시인

금릉풍류 탐진강 물결위에 청자가 노니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 가운데 하나인 비색청자는 세상에 없는 신비로운 색상이다. 흔히 비취빛에서 비색이 나왔다고 하지만, 비색청자의 비색은 비취보다는 신비한 색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다. 과연 이 비색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으면 강진의 탐진강으로 가야한다. 탐진강의 이름은 탐라(지금의 제주)의 사자가 조공할 때에 배가 이 강의 하구인 구십포(九十浦)에서 머물렀다고 해서 탐라의 탐자와 강진의 진자를 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이름 외에도 예양강(汭陽江) 또는 수녕천(遂寧川)의 이름이 있다.

탐진강이란 이름에서는  뱃길이 있고, 예양강이란 이름에는 북쪽에서 흘러드는 물이란 뜻과 월출산의 남쪽이란 지정학적 뜻이 담겨있고, 수녕천이란 이름은 이 강이 빗어내는 편안함이 이끌어내는 정서적인 뜻이 숨어있다. 

여기서 탐진이란 이름을 다시 살펴보면, 그 속에서 뱃길과 함께 찾아지는 것은 배를 실어 온 바람길이 있다. 이 바람길을 따라 남쪽의 봄소식이 가장 먼저 전하여지는 곳이기에 뭍에서는 꽃소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람길은  강진을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첫번째 창구 역활을 하게 하였다. 신라시대 장보고의 청해진을 선두로 하여 고려청자가 세상을 향해 닻을 올리게 되고, 천태종이 새롭게 변신을 하여 백련사라는 정신문화사의 연꽃을 피게 하였고, 조선시대에 하멜의 표류와 함께 서구문명과 접촉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피어났던 강진의 청자에는 이 곳 강진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하곤(李夏坤)은 <남유록>에서 이곳 탐진강의 한 부분인 구십강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19일, 절 누각의 편액이름은 만경(萬景)이고, 그 앞에 구십호가 있어 풍경이 아주 아름답다. 송연청의 ‘누각에서 창해의 해를 보고, 문 앞에서 절강의 물결을 본다’는 말이 이 절을 위해 지은 시편인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이 풍경을 보고 영은사와 같다고 한 것은 참으로 빈 말이 아니다.

밥을 먹은 뒤 세심암(洗心庵)을 갔는데 절의 뒤쪽 1리 되는 곳에 있다. 고목과 빼어난 대나무가 그윽하고 사랑스러운데, 창을 열자 구십호의 반짝이는 물빛이 비단처럼 느리게 흘러가서 하늘과 마주 닿고 있는 이 절의 누각은 더욱 기이하다. 원중랑의  ‘빛나는 풍경을 보면서  멀리 영은사를 지나간다’는 시가 있는데 나는 이 암자 또한 그렇다고 하겠다.

하늘빛과 물빛이 하나가 되는 이곳 탐진강의 풍광을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는 이 기록 속에서, 구십강이 구십호 즉 강이 아니라 호수로도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각의 일출을 보고 흐르는 강물을 문 앞에서 보게되는  이곳 강진의 푸른 빛 속에 우리는 미쳐 살펴보지 못한 물비늘같이 반짝이며 흘러가는 탐진강의 아름다움을 더한 이하곤의 안목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차로 마음을 씻어낸다(以茶洗心)는 명나라 문인 원중랑의 시편까지 더하면서, 문득 청자 찻잔에 담긴 차 한잔 을 보게 된다.

그렇다. 비색청자에는 하늘빛을 이고 흐르는 탐진강이 흐른다. 그 비색청자 잔에 차를 따르면 구십호의 찬란한 물빛이 그대 앞에 옮겨지리라. 마침내 편안해졌는가? 강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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