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귀촌하며 강진 토종벌 산업 본격화
낭충봉아부패병에 강한 꿀벌 증식에 매진

김광수 강진한봉협회장이 정성들여 번식 중인 토종벌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13년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토종벌 증식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김광수 강진한봉협회장이 정성들여 번식 중인 토종벌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13년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토종벌 증식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한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1879~1955)의 말이다. 그가 예언처럼 남긴 말에는 과학이 숨어있다.

농작물을 포함해 지구상의 식물 70%를 곤충이 수정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꿀벌에 의존한다. 따라서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 자원이 줄게 돼 지구는 인류가 살 수 없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봉(토종벌)농가들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지난 2010년 겪은 토종벌의 멸종위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의 토종벌이 90%이상 목숨을 잃었다.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린 탓이다. 한마디로 괴질이었다. 원인도 몰랐고 치료법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해답은 늘 필요했다. 병에 저항성이 강하고 번식력도 뛰어난 종자벌을 증식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광수(50)강진한봉협회장이 서있다.  

지난 18일 찾아간 대구면 용운마을. 천태산 자락을 병풍삼아 들어선 1,000평 면적의 한봉사육장에서 만난 김광수 회장은 줄지어 늘어선 수십 개의 벌통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토종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꿀벌(양봉)과 달리 약간 검은 빛이 돌았다. 크기도 양봉보다 약간 작다. 공격성도 낮아 취재에 별다른 어려움도 없었다.
토종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꿀벌(양봉)과 달리 약간 검은 빛이 돌았다. 크기도 양봉보다 약간 작다. 공격성도 낮아 취재에 별다른 어려움도 없었다.

김 회장이 벌통 뚜껑을 열고 그 속에 놓인 사각 틀을 들어내자 빽빽하게 매달린 벌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김 회장이 정성들여 번식 중인 토종벌(한봉)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벌(양봉)과는 달리 몸통에 약간 검은 빛이 돌았다. 크기도 양봉보다 약간 작았다. 공격성도 낮아 취재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김 회장이 토종벌을 좋아하는 이유는 체계적인 조직력과 부지런함이다. 대부분 해가 떠야 나가는 양봉벌에 비해 토종벌은 새벽에도 나갈 정도로 부지런하다. 나이가 든 벌들은 죽기 전에 문을 지킬 정도로 조직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여기에다 몸에 좋은 꿀까지 제공해주니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김 회장의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보였다. 최근 수일동안 거세게 불어 닥친 바람 때문이었다. 교미를 하러 나온 여왕벌이 종종 바람에 휩쓸려 제집을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이승옥 군수가 김 회장의 한봉사육장을 방문해 토종벌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이승옥 군수가 김 회장의 한봉사육장을 방문해 토종벌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 회장은 “여왕벌을 잃은 벌통은 ‘무왕군’이 돼서 결국 전체가 폐사된다. 그렇게 되면 그 벌통은 분봉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보통 종봉 하나로 분봉 3개를 만들 수 있다. 분봉을 개당 50만원씩 계산했을 때 결과적으로 150만원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고 전했다.

벌(종봉)농사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무리 나누기 즉, 분봉이다. 해마다 5~6월이면 벌통 속에 마릿수가 증가하고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하면 벌 일부가 벌통을 빠져나와 새 무리를 이룬다. 자연분봉이다. 하지만 벌들이 언제 자연분봉을 할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벌을 키우는 농부들은 5~6월이 되면 벌통을 지키고 있다. 벌들이 무리 나누기를 하려고 시작할 때 새 벌통으로 유인해야 한다. 벌통마다 그렇게 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거기다 건강한 여왕벌을 만드는 것도 핵심이자 기술력이다.

김 회장은 개량벌통을 통해 봉군 증식에 탁월한 효과를 보고 있다.
김 회장은 개량벌통을 통해 봉군 증식에 탁월한 효과를 보고 있다.

김 회장은 “종봉 증식 작업을 통해 토종벌 400군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데 그중 300군을 농가에 분양하고 나머지 100군은 다시 종봉을 생산하는데 쓰인다”며 “한봉업이라고 해서 다들 명품꿀을 생산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데, 그보다는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갖춘 건강한 벌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토종벌을 살리기 위해 개발된 ‘개량벌통’을 통해 봉군증식에 탁월한 효과를 보고 있다. 김 회장은 “기존 재래벌통은 습하고 통풍이 안 돼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내부 관찰이 힘들어 질병의 진단이 늦고, 벌집 이동과 여왕벌 격리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면서 “개량벌통은 통풍이 잘 되는 것은 물론, 질병 감염 시 초기 관찰이 가능하고 벌집의 이동과 여왕벌의 격리가 쉬워 질병 확산을 미리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여왕벌 양성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김 회장은 여왕벌 양성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13년도 전국 첫 토종벌 증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국립농업과학원과 전남도농업기술원의 기술지원과 김 회장의 열정과 노력이 접목한 결과였다. 김 회장이 토종벌11군을 가지고 80여군으로 증식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은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한봉 농가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죽어가던 토종벌 산업에 그야말로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었다.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병이 그렇듯 치료약이 없는데다 토종벌은 저항성이 없어 그 피해가 더욱 컸다. 2008년도 우리나라에 들어와 2010년 급격하게 전국으로 확산돼 국내 토종벌의 90%가 폐사했다. 사실상 토종벌이 멸종 직전까지 갔던 것이다.

김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낭충봉아부패병의 계속된 확산에 청정구역으로 불렸던 강진지역도 끝내 감염전파의 벽을 이겨내지 못했다. 2012년도의 일이었다. 김 회장이 키우던 1만5천수, 약 1톤에 달하는 토종벌 200군이 모두 폐사됐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끝나는 듯 보였다.

● “좌절에도 꽃은 핀다. 그 안에 달콤함이 있다”  
김 회장은 본래 서울에서 의류무역사업을 했다. 그러다 부친이 작고하고 홀로 계신 어머니마저 건강이 악화되자 2005년 귀촌을 결심한다. 고향으로 내려와 전망 있게 본 것이 바로 ‘한봉’이었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봐왔기에 낯선 것만도 아니었다. 더구나 대구면 용운리 일대는 한봉을 이루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50군으로 시작한 토종벌은 5년 만에 200군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2012년 ‘낭충봉아부패병’이 불어 닥쳤다. 토종벌 사육이 기로에 놓였지만 그대로 물러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다시 토종벌 종군을 구입해 또다시 도전에 나섰다. 농업진흥청을 찾아가 봉군관리, 사양관리 여왕벌 양성방법 등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갖춰나갔다.

그러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2016년도 또 다시 ‘낭충봉아부패병’ 들이닥쳤다. 기르던 토종벌이 모두 폐사했다. 눈앞이 막막했다. 

“그 때를 떠올리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픔이 컸다. 두 번째 겪다보니 좌절과 고통도 두 배로 다가왔다”며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다. 토종벌을 키우면서 벌들로부터 느끼고 배웠던 인내와 부지런함도 당시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전했다.

2017년도 농촌진흥청은 김 회장의 사육농장을 토종벌 복원 농가로 선정했다. 낭충봉아부패병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저항성 계통의 선발이 필요하다고 여긴 농촌진흥청이 6년의 연구 끝에 병에 강한 토종벌 신품종을 개발했고 이를 김 회장 농장에 보급하며 증식을 이뤄나가고자 한 것이다.    

김 회장은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수익이 아니라 토종벌들의 건강과 안정적인 번식이다”며 “때문에 토종벌 종복원 사업은 무조건적인 분양보다는 차단방역과 관리 등을 통해 제대로 된 방향을 찾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전국 토종벌 사육농가들은 여전히 ‘낭충봉아부패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제가 마땅히 없는데다 유입 경로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기 발견과 지역단위 방역대를 통한 차단방역이 낭충봉아부패병 예방의 성공열쇠라는 것이다.

끝으로 김 회장은 “한봉업은 밀원수에 적극 의존할 수밖에 없어 그만큼 한정된 밀원수로 인한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개인이 심는 밀원수는 한계점이 분명한 만큼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밀원 조림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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