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1454년 강진현 인구는 1,979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7년 1월20일(태종17년) 정유년에 광산현에 있던 병마절제사영을 도강의 옛읍(현 병영)으로 옮기고, 도강현과 탐진현을 합쳐 강진현으로 정하여, 치소를 도강현의 송계(松溪 성전면 수양리 수암마을 부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진군의 생일은 1월20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강진의 인구는 얼마였을까?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의하면 강진현 인구는 355호 1,644명, 軍丁29명, 營軍54명, 船軍 252명으로 총 1,979명이 살고 있었다. 이를 1789년 호구총수에 나타난 인구분포 비율로 계산하면 현재의 완도군과 해남군 북일 일부를 제외하면 실제 1,150여명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54년 당시 강진현은 인근 지역과 비교해 보면 다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었다. 인근의 인구를 살펴보면 장흥현은 276호 인구 1041명, 軍丁21명, 營軍22명, 船軍187명, 해남․진도 지역은 당시 해진현이라 했는데 인구 707명, 軍丁1명, 營軍11명, 船軍164명, 영암은 현재의 해남지역인 북평, 옥천, 화원 지역까지 영암군 관할으로 333호 1,299명 軍丁25명, 營軍26명, 船軍259명이었다.

그 후 335년이 지난 1789년 호구총수에 나타난 강진현(강진완도)에는 8,158호 27,059명으로, 강진지역 인구는 5,779호에 18,864이며, 완도 2,379호 8,195명이 살고 있었다. 강진지역 인구는 1454년 이후 300여 년 동안 16.4배 이상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조선 인구는 얼마였을까. 조선왕조실록 정조22년의 기록에 따르면 1798년 전국 인구는 1,741,184호에 7,412,686명이었다. 1위는 경상도가 1,582,102명이고, 2위는 평안도 1,283,239명, 3위로는 전라도(제주도를 포함) 1,226,247명에 이어 충청도 함경도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서울 순이었다. 인구 분포를 보면 곡창지대일수록 인구가 많음을 보여 준다.

근현대 강진 인구 변화 추이를 살펴보자. 일제강점기 1923년 조사된 강진군지에 따르면 12,531호 63,788명으로 1789년 이후 134년 동안 무려 3.4배로 껑충 뛰었다. 그 뒤 40여년이 지난 1965년에는 두 배로 증가하여 20,625호 127,878명으로 최고 정점을 찍었다.

1960년대 후반 근대화의 물결과 산업사회의 전환으로 탈 농촌현상이 급물살을 타게 됐고, 대도시의 급팽창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로 말미암아 1980년에는 25여 년간 유지되어 온 10만명이 무너지고, 1982년에 9만 미만, 1985년 8만 미만, 1991년에 전년에 비해 무려 1만명이 감소된 6만2천여 명이 되었고, 1993년에 5만8천여 명이 되었다.

새천년에는 49,313명, 2015년에 4만명 선이 무너진 39,168명까지 큰폭으로 감소하다가 2019년 말 현재 18,351호 35,286명이 되었다. 그나마 1인밖에 살지 않는 가구수가 전체 가구의 50%인 9,024호로, 여기에 홀로사는 노인 가구는 4,588호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인구 절벽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는 11,883명(남자 4,613명, 여자 7,270명)으로 노인 인구가 33.7%에 달해 초고령화 사회로써 이제는 어느 때일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3만명도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현실 앞에 인구 증가대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여있다.

강진군은 민선7기가 시작된 이후 인구감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려 인구유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첫 성과가 바로 강진산단에 42개 업체 100% 분양을 완료한 것이다. 기업 유치를 통해 고용창출, 문화관광산업의 집중화, 도시재생사업 추진, 귀농귀어자 지원시책 등 사즉생의 심정으로 인구늘리기 운동을 펼친다.

이렇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강진군의 모습을 보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지난 3월에는 인구감소가 단 2명에 불과했다. 앞으로 강진군이 인구문제로 더 이상 행정력 낭비를 하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한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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