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인구 감소, 2001년부터 인구증가 운동 시작됐다

최근 강진군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강진품애 살기’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강진품애(愛)살기 운동은 군청의 공직자가 먼저 솔선수범하며 강진에 거주하고, 관내 거주 주민 중 관외에 주소를 둔 주민에게 지속적으로 전입을 권장하는 운동이다.

강진군의 인구 배가 운동의 역사는 약 20년 전인 2001년부터 시작됐다. 여러명의 군수가 바뀌면서 이름은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한 것은 같았다.

강진군에서 추진한 최초 인구증가 운동은 2001년 추진한 고향사랑 운동이었다. 이후 인구배가 운동, 인구늘리기 운동, 내고장 주소갖기 운동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인구를 늘리기 위한 운동은 매년 강진군의 숙제였다.

이 운동은 국내적으로 농어촌 지역의 저출산․고령화와 젊은층의 대도시 유출에 따른 인구 급감으로 인해 지방소멸지역이 발생할 것이라는 위기감 화두가 되면서 시작됐다.

젊은층이 없다보니 출생보다 사망이 많고, 전입보다는 전출이 많다보니 해마다 수 천 명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막을 수 없는 농어촌의 현실에 직면해 있었다.

농촌마을에 노인들만 남아 80세 이상 고령자가 논밭을 일구고, 수백 명이 다니던 학교는 전교생이 수십명 안팎으로 감소되어 왁자지껄했던 어린 청소년들의 함성 소리는 온데 간데 없고 정막이 흐르는 빈 교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학교 존폐 여부의 기로에 서며 교육당국과 지역민들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특히, 사람이 떠난 집은 잡초로 지붕까지 뒤덮여 있고, 밤이면 우범지대로 전락하여 가로등 설치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2000년도 말 강진군은 인구가 49,313명으로 큰 폭으로 감소해 최초로 인구 5만명이 무너져 군민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때 국내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의 디트로이트, 일본의 홋카이도 유바라시 등 소도시 인구가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때였다.

이에 강진군은 2001년 내고향 사랑 운동의 주소갖기 운동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군산하 공직자들의 자율적인 참여로 진행됐다.

방법은 실제 강진에 거주를 하면서도 외지의 자녀들에게 주민등록이 있는 군민을 대상으로 전입 권장 적극 추진했으며 유관기관과 단체 임직원의 자율적인 전입도 유도했다.

2001년 추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0년말 49,313명이었던 것이 1년만에 1,612명이 늘어 50,925명을 기록했다.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하며 노력한 결과 큰 폭으로 감소하던 인구가 역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발에 오줌누기’였다.

인구 증가의 꿈은 1년만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지방선거가 진행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당연히 인구증가 정책은 진행될 수가 없었다.

전입유도 시책이 잠잠해지면서 다시 인구는 곤두박칠 치기 시작했다. 2001년말 5만명을 다시 넘었던 것이 2002년말에는 전년보다 무려 4,450명 감소된 46,475명으로 집계됐다.

군 공직자를 대상으로 인구 정책이 진행되면서 공직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많이 터져나왔다. 군 산하 공무원을 대상으로 타 시군 거주 출향인을 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 일부 공직자들은 ‘전입할당제’라며 대상자가 능동적으로 전입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주민등록만 전입되고 거주하지 않는 사람의 주민세나 적십자 회비 등은 돈은 부과되는데 납부할 사람은 없어 금액이 모두 이장에게 부과되는 사례가 일부 발생하면서 불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2010년 7월 1일부터는 이런 경우 개인균등할주민세, 대한적십자회비, 군 장병(의무경찰) 전입 장려금 등은 군 지원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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