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규동/다산정신실천연구소

봉준호 영화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최우수작품상까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101년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이고 비영어권에서 최우수작품상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이다.

한순간에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스타로 발 돋음 한  봉준호 영화감독을 200여년 전의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하는 실학자이며 개혁가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정신에 비추어 보았다.

봉 감독 영화는 그 독창성 때문에 '봉준호 장르'로 불린다. 봉 감독은 그런 수식어에 대해 "내게는 최고의 찬사"라고 말한다. 이러한 독창성이 오스카상 수상의 영예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600여권의 다산학 속에 다산정신은 “주인정신과 위국애민에서 드러난 소통, 청렴, 공정, 탐구, 창조, 개혁”이다.

다산정신은 가장 한국적인 정신으로 200여년전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다산학 속의 골수이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봉준호 장르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다산정신의 핵심은 “주인정신”이다. 봉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기반으로 가장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이것은 다산이 가장 핵심적으로 주장한 백성다운 백성으로써  개인적인 주체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 주인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위국애민”정신도 발휘된다. 즉 지하실과 저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설정 속에서 궁핍한 서민들 삶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서민들의 서글푼 자화상을 연출한 곳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소통”이다. 스텝들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소중한 감성을 제대로 표현토록 함으로써 배우들이 스크린에서 때론 격렬하게 충돌하고 때론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연출하면서 그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한다.   

다산은 암행어사시절 그리고 황해도 곡산부사 시절, 심지어 강진 유배시절에도 늘 현장에서 민심을 살피면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편하게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부패한 현실을 비판하였다. 암행어사 시절 쓴 “기민시”와 강진 유배현장에서 쓴 “애절양”시는 당시의 사회적 부패상을 비판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세 번째는 “공정”이다. 배우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스태프와의 갈등,   변덕스러운 날씨 등 촬영현장은 물론 수많은 과정 속에서 감독은 갈등의 연속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공정한 기회는 물론 신뢰는 영화의 성패를 좌우 할 수있다. 조연의 이름을 불러주고 촬영 중에도 식사 시간을 지키는 등 늘 누구에게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100% 반영토록 하였다.

다산은  무엇보다 과거제도와 서얼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여 기회의 공정성과 계급의  불평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흠흠심서를 통하여 백성들의 목숨을 제도적으로 공정한 판결을 통하여 처리토록 하였다. 이러한 모든 과정 속에서 “청렴”은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었다.

네 번째는 “탐구”이다. 봉감독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서 "12살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굉장히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봉 감독 자체를 ‘봉테일’이라고 한다. ‘봉준호+디테일’을 줄인 별명으로 현장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붙여준 닉네임이다. 그만큼 봉 감독은 디테일하다.

다산 역시 7살 때부터 시를 짓고 학문을 탐구하여 다산학 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다산의 디테일은 오늘날 건축가들도 놀랄 만큼 세밀하게 건축 된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은 2012년에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 될 만큼 다산의 탐구정신과 디테일의 결과이다.

다섯 번째는 “창조”이다. 영화 ‘기생충’은 배설물이 역류하는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방, 전깃줄로 뒤덮인 골목길, 가파른 언덕 위 2층집 등 한국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두 가족의 희비극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의 모습과 짜바구리 같은 우리의 음식문화를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하나의 종합 예술로 창조하였다.   

다산 역시 늘 현실을 바탕으로 농업의 부흥을 위하여 3농 정책을, 기술개발과 도입을 통하여 조선의 경제를 부흥시키고자 이용감(利用監)을, 그리고 의학자로써 마과회통과 촌병혹치를 저술하여 백성들을 병마로부터 구하고자 그의  창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여섯 번째는 “개혁”이다. 봉 감독은 한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브랙리스트에 오른 봉 감독은 당연히 사상적으로 '건전화' 대상 중  한 명으로 '강성 성향'으로 분류된 69명 중 한 명이었다. 이처럼 봉 감독은 한때 영화계의 반개혁적 인물로 찍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영화 감독으로 등장하였다. 다산의 개혁정신은 그의 실학사상의 골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주쟁이로 낙인이 찍혀 18년이라는 유배를 당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다산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다산의개혁정신은 다산의 “경세유표”서문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곰곰히 생각하여 보면 하나하나의 털끝만한 것까지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곧 개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야 말 것이니 이 어찌 충신 지사들이 수수방관할 바이겠는가?”라고 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茶山정신”
세계적인 가장으로 가듭난 봉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을 바라보면서 다산을 생각한 것은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할 만큼 600여권의 책을 통해서   피폐한 조선의 변화와 개혁을 외쳤던 다산정신이 너무나 땅속 깊게 묻혀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 오스카상 수상의 핵심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었듯이 오늘날 가장 한국적 시대정신은 바로 “茶山정신”이라고 확신한다. 다산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을 기반으로 위국애민정신에서 드러난 소통, 청렴, 공정, 탐구, 창조, 개혁의 다산정신을 구슬로 꿰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 승화시켜 제4차 산업혁명시대 새로운 문화강국 Korea로 거듭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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