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산 충혼탑 옆 국궁장을 윗쪽으로 옮기다

보은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4.4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운동코스로 군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보은산은 강진군민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산이다.

이에 윤영수 군수는 1998년 7월 1일 취임하자마자 강진군민들의 쉼터이자 건강증진을 위한 운동코스로 사용되고 있는 보은산 공원화 사업을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보은산 공원화 사업을 결심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됐다. 첫번째는 군민의 영원한 휴식처인 보은산을 찾는 탐방객이 해가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에 산에 오르는 군민들과 등산객의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데도 보은산 등산로 입구에 국궁장(현 충혼탑 부지)이 존재하고 있어 안전 위험 문제가 지적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보은산 공원화 사업을 통해 국궁장을 이전시켜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여 군민의 안전을 도모함은 물론 쾌적한 분위기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국궁이 절실하므로 이설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둘째 이유는 군민의 건강증진 도모를 위해 충혼탑에서 금곡사 입구를 가로지르는 산책로와 임도 개설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임도개설후에는 추가로 등산로 주변에 녹차나무를 심어 차의 대중화까지 노린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보은산이 군민의 휴식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윤 군수의 청사진이 담겨있는 사업이었다.

이처럼 2가지 이유를 들어 군의회를 설득하면서 보은산 공원화 사업을 시작했다. 윤 군수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보은산 공원화 사업은 국궁장 이설 문제 해결부터 시작됐다.

국궁장 이설을 위해 강진군의회로부터 2000년 7월 22일 승인을 받았다. 이설 사유는 국궁장이 보은산 공원 등산로에 위치하고 있어 항상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어 강진읍 정수장 동편으로 이설하기로 결정됐다.

이설부지는 강진읍 동성리 산22-2번지등 14필지 29,430㎡(8,911평)였다. 소요 사업비는 토지매입비 1억7천980만원, 시설비 3억5천819만원 등 총 5억3천799만3천원으로 사업내용은 양무정 이설, 사대(射臺)정각 및 시중당(使衆堂), 경기장 및 부대시설까지 포함해서 이설하는 것이었다. 국궁장 이설 사업은 2000년 11월 시작해 다음해인 2001년 10월까지 11개월이 소요됐다.

국궁장이 이설된 직후인 2001년 12월 강진군에서는 국궁장 이설을 기념해 제1회 강진청자배 전남․광주 남녀 궁도대회를 개최했다. 이때 시작된 청자배 궁도대회는 올해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강진청자축제 시기에 맞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양무정 이라 불리는 국궁장은 1963년 강진읍 서성리 3.1탑 부근에 있는 낙하정(落霞亭)에 과녁을 세워 활을 쏘기 시작한 것으로 역사가 시작됐다. 1963년 8월에는 양무정이 충혼탑 현재 부지로 이전됐다. 양무정이라는 명칭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됐다. 신라대의 양무(陽武)라는 강진 이름을 따와 양무정(陽武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국궁장 이설이 마무리되자 충혼탑에서 금곡사 입구 구간 등산로(산책로) 개설 사업이 진행됐다. 이 사업 구간은 총 2.5㎞로 사업비 2억원에 사업기간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였다. 이때 개설된 등산로는 보은산 명품 산책로로써 강진군민의 휴식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때 등산로의 역효과로 보은산내 불법묘지 조성행위가 확산되기도 했다. 급기야 2005년초부터는 강진군에서 강력한 불법묘지 단속에 나서는 한편, 읍내 이장과 산주, 지역주민에게 보은산을 군민의 안락한 휴식 공간으로 보존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이렇게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캠페인을 전개해 나감으로써 성숙된 시민의식의 발로로 큰 성과를 거뒀다.<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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