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조국 법무장관 지명 이틀 전인 지난 8월 7일 함평읍에 다달았을 때 도로 위쪽에 흔들거리는 플래카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N전광주지검장의 장녀가 대검 공판송무부장(검사장급)으로 승진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어서다.

그의 아버지는 1993년 타인의 수능시험을 대리해 준 스카이 리그 대학 의대 재학중이던 아들의 일탈로 광주지검장 자리를 내놓았었다. 미래 검찰청장으로 손꼽히던 지역대표 인재여서 법조계는 물론 지역민들의 충격과 아쉬움이 컸다.

N전 검사장의 사퇴는 오로지 도의적 책임 때문이었다. 가족이 눈치챌 수 없었던 사이 자식 단독으로 저지른 범죄였다. 그가 사퇴의사를 주변에 흘렸을 때 후배 검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고 대검에서도 그랬다. 이임식장에서는 흐느끼는 여직원들도 있었다한다. N검사장을 모시고 있 었던 검찰일반직 지인으로부터 직접들은 내용이다.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일하던 그해 10월,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장녀와 서울대 공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그녀의 남동생이 동시에 사시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다. 사법시험 사상 최초로 남매가 동시 합격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장녀는 여성3호 검사장이 됐다.

운명의 희비 양극화를 한해에 겪은 드라마 같은 한가정의 사연도 보기드문 진기록이다. 공직윤리와 책임의식이 투철했던 엘리트 공직자에 대해 하늘이 내려준 겹경사라는 취지의 찬사가 이어졌다.

조국 논란이 일고 있던터라 서울대 법대 선후배관계인 N전 검사장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처지가 번갈아 스쳐갔다. 그리고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는 가치를 다시 생각케했다. 이쯤되면 주어진 짐을 내려놓고 산중 고행이라도 수행하려는 각오가 엿보이는 마지막 남은 지성을 기대해 보았다.

하지만 장관 임명은 강행됐고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터프한 검찰압박 강공드라이브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 법무장관에 대한 호남지역 여론조사 결과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날 조사된 리얼미터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정평가가 49.6%, 긍정은 46.6%였다.

같은 조사에서 광주·전라 여론은 ‘잘못했다’는 응답이 38.7%, ‘잘했다’는 응답이 56.0%로 나왔다.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을 검토하던 7월초부터 최종 임명까지 리얼미터는 모두 8차례에 걸쳐 관련조사를 했다. 광주·전라의 경우 7월초 검토 단계에서 78.5% 찬성으로 가장 높았고, 찬성이 가장 낮을 때가 52.7%였다.
 
반대가 찬성을 앞지른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 이전에 발표된 한국갤럽과 중앙일보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역시 호남만 긍정이 부정을 앞섰다. 조국사태는 대통령과 민주당에 부정으로 기운 여론 변화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호남만큼은 흔들림없이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에서 긍정이 부정을 큰차이로 앞서고 민주당 지지도도 월등히 높았다. 대통령 지지도는 70%대, 민주당은 60%전후를 지켜오고 있는 곳이 호남이다. 다른 당은 호남에서 한자리수를 넘지 못한다.

호남을 향한 민주당의 애정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물분가지(不問可知). 탈 원전 에너지정책 전환으로 수천억 적자로 돌아선 한전이 6천억을 들여 나주한전공대설립을 확정 지은 마이웨이식 결단은 호남 애정 강도의 바로미터다.

이와관련 보수언론은 대학 정원 미달 사태가 시작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예산 낭비와 고등교육 비효율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공학자들은 코미디라고 가세했다. 에너지 관련 공대를 건립하고 싶으면 전남대등 지역 대학 전기과를 특성화하면 예산과 효율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여권은 조국 법무장관에 대한 호남의  독보적 지지를 재확인하고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법하다. 아무리 보수층이 현 정권을 비판해도 전라도와 좌파 진보세력이 이탈하지 않으면 총선과 대선의 승리는 가능하다는 계산에 기반한 결론일게다.

‘호남정권’ ‘광주일고정권’이라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호남 우대 행보를 이어가는 속사정을 알만하다. 획기적인 지역 배려를 거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패한 정권에 지지를 보냈다는 손가락질을 당하는 수모의 상황만은 비켜가기를 희망한다.

대통령은 무슨 사연이 있어 역대급 흠결소지자에게 이토록 집착하는가. 조국 임명후 이런 탄식형 의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암울한 미래 아지랑이를 만들어내고 독선통치의 상징처럼 비춰지는 조국임명 강행 논란에 나홀로 긍정반응을 보인 까닭은 또 무언가.

‘문재인=조국’ 인식이 보편화된 현시점에서 문정권에 대한 호남의 지지도는 무등산 주상절리대 보다 더 견고하게 느껴진다. 호남찬가와 우대 정책에 혼이 팔려있는 사이 타 지역의 호남 반감이 세를 더해 원래의 모습대로 부활했지 않나싶다. 호남고립화는 심화되어 갈라파고스가 상징하는 고도(孤島) 환경을 닮아가고 있는 것같아 추석뒤끝이 개운치않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