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복원 끝마친 영랑생가에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인해 강진군이 ‘남도답사일번지’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강진군에서는 이를 관광에 활용했다.
 
유홍준 교수의 승낙을 받아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지점인 월출산 풀치재 삼거리(성전과 작천 갈림길)에 ‘남도답사일번지 강진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대형 홍보 안내판을 세웠다.
 
이는 ‘남도답사일번지’라는 브랜드를 타 지역에 앞서 선점함으로써 강진군의 대명사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출판물이나 책자, 대외문서 등에도 ‘남도답사일번지’라는 문구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 현대사회는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지역 아이덴티티(identity)를 브랜드화하여 타지역과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강진군은 지난 2004년 6월 3일 특허청에 ‘남도답사일번지’를 상표등록 출원을 했고 2005년 8월 18일 등록이 완료됐다.

이처럼 책 한권의 영향으로 강진군이 남도답사일번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강진군 답사 열풍이 불어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

1993년 출판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은 인문도서 최초로 판매부수 100만부를 넘으며 전국적인 답사열풍을 몰고왔다. 이로 인해 강진군의 탐방객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책이 출판된 시기인 90년대는 관광버스를 이용한 탐방객들이 주를 이뤘다. 다행히 영랑생가 복원사업이 마무리되고 모란꽃이 만개하면서 봄철에 강진을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영랑생가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1차선이던 군청광장과 도로, 인근 공터에는 평일과 공휴일 구분없이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주차되고 영랑생가 입구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강진읍으로 몰려들면서 극장통 거리에 한정식을 주메뉴로 영업을 하고 있는 흥진식당, 금산식당, 고향식당과 현재 둥지식당, 대흥관 식당, 밀물식당 등이 많은 혜택을 입었다.

이와 함께 터미널 부근 해태식당과 명동식당 그리고 목리장어센터, 동해회관 등 관내 주요 식당들에 손님들이 넘쳐나 강진의 요식사업이 활성화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답사기에 소개된 남도여관과 해태식당이 발 디딜 틈 없도록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내집 마련보다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너도나도 자가용을 구입하는 시대가 왔다. 공휴일에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는 등 생활패턴이 바뀌는 선진국형 문화향유시대로 변모됐다.

답사열풍이 불었던 90년대에 남도답사일번지 강진을 방문했던 관광객들중 일부 대학생들은  문화유적지와 식당위치 등을 친절히 안내해준 군민들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며 최근까지도 강진을 찾고 있다.
 
이들은 당시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결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자가용을 이용해 강진을 재방문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군민과 공직자, 회사원은 물론 문화관광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 친절이 몸에 배어 탐방객을 맞이할 때 다시 찾고 싶은 강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말을 바꿔말하면 ‘백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옛말을 귀담아 새겨듣고 친절이 강진군민의 자산이 되도록 모든 군민들이 솔선수범 실천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강진군은 유홍준 교수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감사패 수여에 이어 96년에는 명예군민으로 선정했다. 2004년 유 교수가 문화재청장으로 취임하자 군민들은 자발적으로 환영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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