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광주전남연구원장

더없이 화창한 봄날이었다. 추울까 더울까 참으로 알맞게 따뜻한 날씨였다. 이처럼 좋은 날이기에 우리는 광주의 둘레길인 빛고을산들길을 사랑하는 모임 창립1주년 행사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아침 9시. 광주과학기술원 정문 앞에서 빛길모(빛고을산들길 사랑모임) 회원 60여명은 광주시 생활체육회 강사의 지도로 몸을 풀고 나서 마지막 6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배낭에 빛길모 깃발을 꽂고 줄서서 걷는 행렬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 왔다. 무성하게 잡초가 돋아나 갈 수 없을 정도로 방치된 이 길을 혼자서 걷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날따라 지나는 행인들도 차량들도 비켜 주며 무슨 단체인지 궁금해 하는 눈치다. 특히 비아시장의 닭전머리를 지날 때는 많은 닭들조차 꼭꼭 소리를 내며 반기는 눈치다. 전통시장 풍경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하남산업단지의 숲길로 들어섰다.

안내판을 보니 하남이라는 이름은 마을안에 큰 우물이 있어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를 ‘한우물’ 또는 ‘하나물’이라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남이 되었단다. 이처럼 걸으면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니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스토리텔링 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리길 숲길이 끝나고 한가로운 농로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여기저기 과수원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꽃들을 감상하며 꽃이름 알아보느라 여념이 없다 보니 크고 작은 호수들이 나와다.

이곳저곳에서 강태공들이 모여 앉아 낚시하는 모습들이 한가로워 보여 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 모르겠다. 광주 대도시에도 이처럼 한적한 시골이 있는가 싶어 놀래는 일행들도 보았다.

지난 1986년 전남의 광주시는 광주직할시로 승격되었고, 이듬해 광산군이 편입되면서 오늘의 광주광역시가 된 덕분에 광주는 적지 않은 농촌을 보유하는 도농복합도시가 되었던 터다. 동네 어귀를 지나며 우리는 견공들의 환영도 받고 때로는 고양이들이 수줍은 얼굴을 내밀어 주는 덕분에 피로를 잊을 수가 있었다.

조그만 마을동산에서는 시제를 모시는 모습도 보였지만, 젊은 층은 보이지 않았다. 어떤 가문에서는 참가하는 자손들에게 격려수당을 지급하는 고육지책까지 강구하고 있다니 씁쓸해진다.

마침내 세 시간 남짓 11㎞를 무탈하게 걷고 난 회원들은 목적지인 임곡역에 도착, 부근 황룡강변의 음식점에서 뜻 깊은 창립 1주년 행사를 가졌다. 특히 두 가수가 기꺼이 재능기부해 주면서 우리는 모처럼 싱어롱(singalong) 시간을 갖고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다. 오로지 걷기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처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면서 말이다.

빛길모 회원들은 앞으로도 열심히 걸으며 보다 좋은 곳을 벤치마킹해서 빛고을산들길을 남도의 명품길로 만들어 보자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모두가 홍보대사가 되어 광주의 둘레길을 널리 알려 전국에서 앞다투어 찾아오도록 노력하자는 약속도 하면서 말이다. 문득 유명한 배우 하정우가 생각났다. 그는 최근에 ‘걷는 사람, 하정우’란 책을 내놓았는데, 걷기 매력에 푹 빠져 그야말로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루 3만보, 가끔은 10만보를 걷는다는 이사람, 길위의 소소한 재미와 추억들을 모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다는 하정우에게 빠져 그의 책을 단 숨에 읽어 보았다. 고민이 많던 날, 걷는 과정에서 고민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오늘도 변함없이 땅의 단단한 질감을 허벅지까지 느낀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면서 틈나는 대로 열심히 걷고 또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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