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으로 물든 그곳, 쉐프샤우엔에서 길을 묻다

강진일보에서는 지구촌, 글로벌시대를 맞아 <유헌 시인의 세계기행>을 싣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기행 편입니다.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 독자나 다녀오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첫번째로 1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편집자주

연재순서
① 열정의 나라 스페인, 그 심장부에 첫발을 딛다
② 중세로의 시간 여행, 그 첫 여정
③ 바람의 언덕에서 돈키호테를 만나다
④ 살라망카 플라자 마요르광장에서 중세를 읽다
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그 지구 끝으로
⑥ 플라멩고와 투우의 본고장 세비야
⑦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⑧ 낯선 모로코에서도 태양은 떠오르고
⑨ 파랑으로 물든 그곳, 쉐프샤우엔에서 길을 묻다
⑩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눈물
⑪ 유럽의 발코니 프리힐리아나로
⑫ 발렌시아 왕국의 흔적을 찾아
⑬ 사그리다 파밀리아, 그 감동 속으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공존하는 땅, 세계의 여행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인 쉐프샤우엔. 해발고도 660미터의 해피라인에 위치한 인구 3만 5천명의 작은 산간마을이다.
오늘의 여정은 모로코 최북단 리프산맥을 넘어야 한다. 가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다. 가끔씩 비포장 공사구간까지 있어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사실 우리 일행이 카사블랑카 대신 선택한 쉐프샤우엔이 국내 여행객에게 알려진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단다. 가는 길이 위험해 여행사들이 꺼려한 점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했다. 요즘은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도로 곳곳을 정비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길옆으로 모로코의 들판과 산간마을들이 이어졌다. 마을 어귀나 들판에 현지인들이 눈에 자주 띈다. 스페인의 농촌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 일찍이나 저녁 선선할 때 주로 일을 한다지만 모로코 사람들은 뙤약볕도 개의치 않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여유가 없고 팍팍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디에서 장이라도 섰는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시골 찻길 옆을 걷는 사람들이 유난이 많았고, 가끔 노새를 탄 사람도 보인다. 군데군데 산기슭 집 담장 너머로 모로코인들의 고단한 일상이 스쳐 지나간다.

아침 7시에 페스를 출발해 4시간 30분이 걸려 쉐프샤우엔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도착했다. 마을 뒤로 우뚝 솟은 티소우카(2060M)와 메고우(1616M)를 등지고 해발고도 660미터의 해피라인에 위치한 인구 3만 5천명의 작은 산간마을. 험준한 리프산맥의 두 봉우리 사이에 걸터앉은 새하얀 산간 마을이 참 이국적이다.

쉐프샤우엔이라는 지명은 마을 뒤 산꼭대기 2개의 큰 봉우리가 염소의 뿔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15세기 경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피해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건너온 무슬림에 의해 처음 세워졌고, 오늘의 파란마을이 된 것은 1930년대 유대인들이 이주해오면서부터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과 낙원을 상징하는 청색과, 부귀를 가져다준다는 파랑색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조금 오르자 빛바랜 황토빛 건물이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아취형 문을 들어서니 바로 메디나(구 시가지)로 이어졌는데 처음부터 온통 눈이 시리게 푸른 블루 일색이다.

지중해 사이로 유럽과 아프리카 공존 … 세계 여행객들 사이 인기

벽면과 대문, 지붕은 물론 길바닥까지도 파란색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 베르베르 스타일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산간마을, 골목 양 옆에 늘어선 즉석 노점에서는 할머니들이 올리브 열매 등 갖가지 과일을 팔고 있다.

특히 눈에 띈 과일은 무화과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암 등 남부지방에서만 재배한다는 무화과를 북아프리카 리프산맥의 산간마을에서 본 것이다. 고향의 맛을 느끼고 싶었지만 유로화가 아닌 현지화폐 디르함만 통용되고 있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골목에는 작은 공방과 원색의 직물, 전통 가죽신발 바부쉬를 파는 가게 등이 이어진다. 공을 차거나 공기놀이를 하는 여자 아이들,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걷는 여인들, 모로코 전통 의상인 젤라바를 걸친, 혹은 뾰쪽 모자를 쓰고 수다를 떠시는 할아버지까지, 골목에서 만난 그들의 표정에서는 한결 같이 여유가 느껴졌다.

모로코인들은 사진에 찍히면 영혼을 뺏긴다고 생각해 사진찍기를 꺼린다고 하는데 샤우엔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지중해의 물빛이 리프산맥의 발치에 닿았을까. 깊은 바다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대로 몸을 맡기고 걷는다.

파란 하늘이 무너져 내린 모로칸 블루에 빠져 한참을 걷다보면 마음까지도 파랗게 물이 들고 말리라.
메디나의 중심 무타엘 하맘 광장 주변에 위치한 미술관과 박물관도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인데 마즈젠 광장에서 동쪽 끝 안사르문 까지 이어지는 골목을 꼭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메디나에서 가장 예쁜 골목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파란 요정의 마법에 걸려 하루아침에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변해버렸을까. 사진이 가장 예쁘게 나온다는 골목에서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인내심까지 발휘하며 1시간 여 동안의 메디나 여행을 부리나케 마쳤다.

배낭 여행객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쉐프샤우엔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아직은 낯선 땅인 모양이다. 골목에서 만난 그곳 사람들은 우리를 일본인이냐고 묻곤 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우리 한국 여행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쉐프샤우엔만은 아직 예외라는 생각이 든다.

2시간여의 메디나 여행을 마치고 중앙광장의 전망 좋은 알라딘식당에서 모로코 현지식 꾸스꾸스로 점심을 먹는다. 창문 너머 쉐프샤우엔의 마을 모습이 한 장의 그림엽서로 다가온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공존하는 땅, 세계의 여행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인 쉐프샤우엔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꼭꼭 숨은 오지 중의 오지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세계 각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답은 차별화였다. 나만의 색깔을 갖는 거였다.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거였다. 골목길만큼이나 긴 내력을 찾아내서 길어올리는 일이었다. 내가 살다 온 목포의 달동네 다순구미의 오래된 골목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강진달빛한옥마을의 처마선과 월출산 능선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풍경,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드는 일, 그건 온전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계속> 유헌(시조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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