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직후 체육진흥 열풍속 종합운동장 건립됐다

종합운동장내 있는 실내수영장과 제1실내체육관의 최근 모습이다. 제1실내체육관은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종합운동장에서는 크고 작은 스포츠대회가 잇따라 개최되고 있다. 전국대회 규모의 많은 행사가 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되면서 대회기간동안 선수단과 가족 등 많은 인원들이 강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강진의 숙박시설과 식당들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종합운동장은 88올림픽 직후 조성됐다.

88올림픽이 끝나고 뜻있는 원로 체육인사와 군민들 사이에서 체육진흥을 위해 체육기금과 종합운동장을 조성해야 된다는 여론이 뜨거운 열기처럼 솟아올랐다. 문제는 조성을 위한 기금이었는데 강진군체육회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모금활동을 펼쳤다.

강진군체육회에서는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 부산, 광주, 목포 등 출향기업인 등을 방문한 덕분에 112명이 동참해 1억800여만원이라는 거금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는 기부금품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시행(2008.12.26) 이전이라서 모금활동 가능하던 시대였다.

종합운동장 건립 당시인 1990년 종합운동장 조감도 모습이다. 민선시대 이후 추가로 설치한 축구장과 제2실내체육관 등을 제외하면 현재 모습과 동일하다.<사진제공=윤순학>
군민들의 의견을 모은 결과 종합운동장은 군동면 호계리 현재 부지로 결정됐다. 당시 부지에는 영포저수지와 일부 사유지가 포함돼 있었다.

영포저수지는 매립야만 했다. 영포저수지를 용도 폐지하는 대신 가까운 곳에 있던 파산저수지를 숭상하여 대체수원을 확보한다는 조건아래 1989년 9월 28일 농지개량조합(현 한국농어촌공사 강진지사)의 대의원총회 의결을 거쳐 82명의 몽리민에게 동의서 받아 사업이 진행됐다.

대체수원인 파산제 숭상은 당시에 실세 장관으로 알려진 김식 농림수산부장관의 행․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사업 추진이 가능했다. 군동 파산제는 20m를 숭상했고 1991년 3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약 1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공사가 진행됐다.

종합운동장 건립을 위해 부지 매입을 추진했는데 총 104필지 140,361㎡가 대상이었다. 부지중에서 28필지 76,699㎡는 농지개량조합 땅이었고 20필지 16,395㎡는 국가소유, 3필지 197㎡는 군유지, 48필지 42,100㎡는 사유재산이었다. 그 외에 묘지도 99기가 존재했다.

당시 종합운동장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조성면적은 140,361㎡(42,459평), 수용인원 7,000명, 주차장 252면(현재 럭비구장 포함), 순환진입도로 1.6㎞ 규모였다. 사업기간은 1992년 10월부터 1997년 12월이었고 사업비는 70억9천8백만원이었다.

사업비 규모를 살펴보기 위해 공무원 봉급으로 계산해보면 1993년 6급13호봉 본봉이 522,500원이었고 2019년 6급13호봉 본봉은 3,222,500원으로 617%가 올랐다.

이를 감안해 예산을 현재 금액으로 환산해보면 약 438억원정도가 나온다. 대규모 사업이었던 셈이다. 주경기장 24,220㎡(스텐드423m) 게이트볼장 2면, 테니스장 9면, 배드민턴장 6면 등이 조성됐고 시공은 남양건설(주)가 맡았다.

이때 종합운동장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문병일 군수는 종합운동장을 조성 계획을 세우면서 27개 시군(현재 22개 시군)에서 규모가 제일 큰 여수시보다 더 커야한다고 말하며 당초 계획이었던 127,677㎡(38,660평)보다 12,684㎡(3,841평)을 추가로 확보해 현재 종합운동장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이 덕분에 강진군은 전남도내 어느 지역보다 규모가 큰 종합운동장을 가질 수 있었고 이는 스포츠대회 유치의 밑거름이 됐다. 현재 종합운동장은 조성 당시보다 늘어난 176,787㎡(53,531평)이다.

이때 종합운동장 사업은 군청 새마을과내에 있던 건전생활계를 1990년 9월 7일 체육청소년계로 전환해 사업을 추진하도록 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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