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규동 박사/강진군 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또 유명해지기 위해서 출세를 원한다. 그 출세를 위한 욕망과 수단과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출세를 위해서 사람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출세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많은 선각자들은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처세 하도록 교훈을 남기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다산은 조정 관료시절에그 살벌한 당파싸움 속에서도 출세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위한 일에 원칙을 두고  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암행어사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당시 다산은 백성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면서 탐관오리들을 준엄하게 비판하며 백성들의 편에서 사건을 처리하였다. 특히 목민관들의 착취가 도를 넘는 것에 분노하였다. 특히 요즘으로 말하면 윗선에 줄이 있는 사람들이 더더욱 비리에 앞장섰던 것들을 철저히 고발하였다.

측근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다산의 자찬묘지명을 보면 다산은 암행어사로 활동하면서 조정의 정승인 서용보의   집안사람이 향교의 땅을 서 정승의 집에 바쳐 묘지로 삼도록 도모하면서 거짓말로 땅이 좋지 못하다고 속이고, 그곳 유학자들을 위협하여 향교를 옮기면서 명륜당을 뜯어버린 사건을 조사하여 잡아서 징계하였다.

또 대여한 곡식을 돈으로 고가로  거두면서 백성들이 원망하자 임금이 사도세자의 능에 자주 다니는 그 길을 닦아야 한다고 핑계를 댄 것을 임금께 보고하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전 연천 현감 김양직은 왕가의 묘자리를 잡아주는 지사 출신으로 조정에 줄이 있는 자였다. 5년간이나 온갖 나쁜 짓을 다하면서 첩까지 거느리면서 탐관오리 짓을 하였다는 것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또 전 삭령군수 강명길도 궁중 의사 출신으로 조정에 든든한 줄이 있었다. 강명길이 군수직을 마치고 돌아갈 때 얼마나 많은 뇌물이 있었는지 운반하기가   어려울 정도 였다고 고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암행어사의 고발에도 조정에 빽들이 동원되어 조치가 되지 않은 것에 더욱더 분노한 다산은 더욱더 강력한 상소를 올려서 처벌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다산은 임금의 측근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였다.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 원칙대로 일하다!
다산에 대한 반대파들의 갖가지 공격에 못이겨 정조는 다산을 금정찰방으로 좌천 아닌 좌천을 시키다. 그러면서 다산의 자찬묘지명을 보면 잠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올라오라는 정조의 내심이 깔려있었다. “비록 종적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나 조야에서 이런 소문을 얻었으니 이것이 곧 그의 단안이다.

설사, 이미 선으로 향하였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스스로 분발하면 그에게 있어서 옥성이 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다. 전 승지 정용을 금정도 찰방으로 제수하니 길을 떠나면서부터 살아서 한강을 넘어올 방도를 도모하도록 하라.” 정조는 다산을 보내면서도 어쩐지 짠한 마음으로 조정으로 잘 돌아올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

다산이 금정찰방으로 재직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하였다. 이에 대한 공적을 따져서 정조는 조정으로 불러 올려고 하였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의 이야기가 자찬묘지명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전 관찰사 유강이 이존창을 체포하고 용이 그를 잡는 일에 참여한 바가 있다하여 용에게 공을 돌려 그 공으로 발탁되도록 하려 하였다.

주상이 듣고 이정운에게 정조가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서 도착 즉시 요구하도록 분부하고, 용으로 하여금 이로 인하여 드디어 조정에 오는 길이 열리도록 하였다. 이익운이 또 주상의 유지를 전하되, 용으로 하여금 사실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이정운에게 부치도록 하였다. 용이 말하기를, “옳지 못합니다. (중략) 죽어도 감히 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주상의 뜻을 따름으로써 나로 하여금 부끄러워서 죽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하였더니, 이익운이 무색하여 갔다.

“다산은 임금이 공을 세웠으니 공적서를 올리도록 했지만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거절하였다. 이처럼 다산은 임금이 봐줄려고 했어도 물리치고, 오직 원칙에 충실하였다. 출세를 위해서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포장하여 결국엔 들통이 나서 세상의 온갖 비난을 받는 오늘의 세태를 바라보면서 다산의 청렴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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