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모로코에서도 찬란한 태양은 떠오른다

강진일보에서는 지구촌, 글로벌시대를 맞아 <유헌 시인의 세계기행>을 싣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기행 편입니다.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 독자나 다녀오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첫번째로 1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편집자주

연재순서
① 열정의 나라 스페인, 그 심장부에 첫발을 딛다
② 중세로의 시간 여행, 그 첫 여정
③ 바람의 언덕에서 돈키호테를 만나다
④ 살라망카 플라자 마요르광장에서 중세를 읽다
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그 지구 끝으로
⑥ 플라멩고와 투우의 본고장 세비야
⑦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⑧ 낯선 모로코에서도 태양은 떠오르고
⑨ 파랑으로 물든 그곳, 쉐프샤우엔에서 길을 묻다
⑩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눈물
⑪ 유럽의 발코니 프리힐리아나로
⑫ 발렌시아 왕국의 흔적을 찾아
⑬ 사그리다 파밀리아, 그 감동 속으로

‘메카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인구 150만의 메크네스 전경. 17세기 모로코의 수도이기도 했다.
여행 6일째, 7월의 첫날이다. 간밤에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와이파이 때문에 잠깐 로비에 내려갔다가 룸이 있는 3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잖아도 엘리베이터 겉 마무리가 나무로 돼 있고 운행 중일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 신경이 쓰였었는데 열리지 않으니 당황 할 수밖에. 그런데 그게 자동문이 아니라 손으로 열고 닫는 여닫이 문이란 걸 한참 후에야 눈치챘다. 불과 1분여 갇혀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경험은 3년 전 동유럽 여행 때 격은 적이 있긴 했다. 체코 프라하에 도착하기 전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의 산중턱에 자리한 아름다운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었다. 그런 부분은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관은 현대식 멋진 호텔인데 엘리베이터는 구석기 시대였다.
 
스페인 여행 첫날 마드리드 호텔에서는 숙소 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등 뒤쪽에서 열리는 바람에 한바탕 실소를 터뜨린 적도 있었다.

나라마다 층수 개념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1층이 로비이지만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로비가 0층이다. 스페인은 지하 1층을 0층이라고 했다.

고속도로변 휴게소의 화장실 사용도 스페인에서는 무료였지만 포르투갈과 모로코는 유료였다. 오래 전 서유럽 여행 때는 잔돈이 없어 1달러 내고 몇 사람이 손을 잡고 간적도 있었다. 문화와 제도의 차이니까 뭐라 할 수도 없고.

어쨌든 탕헤르의 엘리베이터는 이상하고 방에서 냄새도 났지만 호텔식은 만족스러웠다. 빵 맛이 유럽 호텔들과는 달리 달달했다. 내 입맛에 맞았다. 호떡 맛이 나는 빵도 맛있었고 특히 호텔 뷔페음식 진열대 옆 바닥에 앉아 히잡을 두른 현지 여인이 직접 만들어주는 ‘스맨’이라는 부침개는 인기 최고였다. 오랜만에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리무진 버스에 오른다.

고대도시 메크네스의 잿빛 속으로

17세기 모로코의 수도 메크네스를 찾아간다. 스페인의 들판에서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모로코에서는 주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우리의 6,70년대 생활 모습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들의 삶이 참 고달파 보였다.

아침 일찍 탕헤르를 출발해 오후 1시가 넘어 메크네스에 도착했다. 예약된 식당으로 바로 가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라마단 금식 기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푸짐한 밥상을 받고 보니 그들에게 참 미안하다. 식당을 나오면서 퀭한 눈빛의 종업원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유로화 몇 장을 쥐어주었다.

‘메카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인구 150만의 메크네스는 11세기부터 군사 주둔지로 발전해 나가다. 17세기 모로코 알라위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황금기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리적으로 수도 라바트와 페스의 중간지점에 있어 여행객들이 잠시 지나가는 정도의 도시로 전락한 느낌을 받았다.

메크네스 거리의 햇살이 장난이 아니다. 메크네스 광장을 가로질러 재래시장에 들렀으나 먹거리들만 가득해 별 흥미가 없었다. 광장 한 쪽의 특산품 코너에서 자그만 도자기 제품 하나 사들고 버스로 왔더니 이미 다른 일행들은 자리에 와 있다. 에어컨 빵빵한 버스 안이 최고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의 유적들은 유럽과 이슬람 문화가 뒤섞인 독특한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단다. 

세계 최대의 미로를 찾아

14세기 경 조성됐다고 하는 페스의 메디나는 아직도 수 백 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메크네스 인구가 현재 150만 명이라는데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페스는 이미 8세기 경 160만 명이 살았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메디나는 9천 여 개 이상의 골목으로 형성되어 있단다.

페스에 도착해 구시가지인 메디나 입구 ‘부 즐주드’ 정문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본격적인 미로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골목은 좁았다. 팔려고 내놓은 온갖 물건과 인파로 인해 골목은 발 딛을 틈도 없어 보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것 같다.

손님을 부르는 호객소리와 부산한 발자국 소리, 심지어 노새몰이꾼의 고함소리까지 북새통도 그런 북새통이 없다. 상점 주인이나 종업원은 아닌 것 같은데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표정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우리 일행을 보고 ‘빨리빨리’을 외치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페스의 메디나는 14세기 경 조성됐다고 하는데 아직도 수 백 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단다. 세월의 때가 흠뻑 묻은 사원, 염색공장, 이슬람학교, 심지어 궁전까지 모두가 골목 안에 있었다. 우리는 일행을 놓칠세라 앞사람의 꽁무니를 열심히 따라갔다. 어디 머무를 여유가 없었다.

구시가지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사흘 걸러도 모자랄 것 같다. 페스의 메디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봐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린 불행하게도 그럴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정해진 코스대로만 급하게 걸었다. 패키지여행의 한계였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그 자리만 맴돌다가 날을 셀 판이니까. 메디나를 빠져나와 도자기 공장, 염색 공장 등을 둘러보니 또 하루가 지나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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