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문화유적을 구석구석 훑었다

선사시대부터 유적부터 천연기념물까지 망라
금곡사 3층석탑 해체복원 공사 사진 게재 ‘귀중한 자료’

강진은 다른지역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문화유적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벌써 60년대 중반에 강진의 명승고적을 사진첩으로 만든 책자가 있고, 강진의 문화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자 또한 70년대 중반부터 보이고 있다.

이는 아마도 60년대 중반부터 고려청자를 발굴하느라 서울에서 학자들이 많이 내려오고, 전국에서 강진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다른 지역보다 빨리 확립됐던 것으로 생각된다.

국립목포대박물관과 전라남도, 강진군이 1989년 공동으로 발행한 ‘강진군의 문화유적’이란 책자도 그런 맥락의 기록이다. 강진의 문화재와 문화유적을 불교유적과 유교유적, 도요지, 민속자료, 전통건축, 천연기념물등으로 나누어 집대성한 방대한 저술이다. 각 읍면별로 문화유적 지도를 그려 넣은 것도 이 책이 갖는 개념이 남다르다.

1989년 금곡사 3층석탑을 해체복원할 때의 모습이다. '강진군의 문화유적'이란 책자에 실려있다.
서문에 따르면 목포대학교측은 강진의 문화재 정리를 위해 1988년 4월 13일부터 9개월 간 각 팀을 만들어 집중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선사시대 유적과 관련해 이 책은 강진이 아직 구석기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서두를 열고 있다. 그러나 강진에서는 2004년 칠량 중흥마을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돼 확실한 구석기 문화를 갖는 지역이다. 이렇듯 문화와 역사는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면서 새롭게 바뀐다는 것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1988년 6월 해체 복원작업을 했던 금곡사 3층석탑(보물 829호)의 관련 사진이 게재돼 있다는 것이다. 금곡사 3층 석탑은 전체적인 몸체가 기울어 위태로운 상태였다.

시기적으로 이 책의 자료수집이 1988년 4월부터 이뤄졌기 때문에 금곡사 3층석탑을 해체복원한 생생한 현장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곡사 석탑에서는 탑신상면의 사리공에서 크고 영롱한 부처님 진신사리 1과와 회백색 사리 31과가 발견돼 화제가 됐다.

당시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진신사리가 발견됐다고 흥분했다.  사리는 주홍색으로 직경이 3mm, 두께 2mm의 타원형이었다. 금곡사 3층석탑에서 발견된 진신사리는 불국사 석가탑, 월정사 석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발견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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