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에 반한 김종호 도지사 도청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끝내 무산

<1> 들어가면서

2019년 신년을 맞아 기존의‘잊을 수 없는 그 사람’과 함께‘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다.‘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지역에서 각 분야에 종사하면서 그 일의 변화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여러 가지 뒷이야기나 자신의 경험을 전해준다. 첫 번째 인물로 윤순학 전 기획홍보실장이‘향토문화가 자산이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먼저 본격적인 글을 연재하기에 앞서 나보다 더 유능한 공직 선배님들도 있는데 강진의 향토문화에 대해 글을 연재하게 돼 송구스럽고 부담된다. 많은 양해바란다.

나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마량면 산동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마량면은 대구면에서 분리되지 않았기에 대구면에 속해있었다. 대구초등학교와 강진중학교를 거쳐 장흥고에 진학했다.

현재 대구면사무소 앞에 있는 단풍나무의 모습이다. 예전과는 약간 달라진 모습이다.
어렸을 때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책을 자주 읽었고 다 읽은 책은 주변의 친구들과 바꿔서 보기도 했다. 꿈을 이루고 위해 대학교에 입학해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이때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때였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꿈은 접게 됐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1~2년정도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다가 1977년 전라남도에서 주관하는 지방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에 응시하게 됐다.

당시에 나의 친형님이 군청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일을 한다면 막연하게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시험장소가 광주 조선대학교 부설 여중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됐는데 학교에 시험응시생으로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나는 당시에 ‘4급 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7급 공채 시험정도가 될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탓인지 운이 좋았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험에 합격했고 그해 10월 대구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아 공무원으로서 첫 근무를 하게 됐다. 일명 사람들이 면서기라고 불렀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대구면은 마량면과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규모가 꽤 컸다. 1977년 당시에 대구면의 인구가 1만명이 넘었다. 오늘날 강진읍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때 버스조차 많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마량 산동마을에서 대구면사무소까지 약 5㎞의 산길을 걸어서 출퇴근했다.

현 건물이 들어서기 전 일제강점기때 지어졌던 대구면사무소의 건물이다. 면사무소 앞에 길쭉한 모습의 단풍나무가 인상적이다.
45분정도 걸렸는데 산길 중간에 묘지가 많았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무섭기도 했다. 내가 대구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인 1977년에는 고려청자 재현사업이 막 시작됐던 시기였다. 당시 정채균 군수 재직시절이었는데 군수와 이용희 청자장과 정부 인사 등이 대구면에 자주 내려올 정도로 청자재현 사업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잠시 대구면사무소 건물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내가 막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할 당시에는 일제강점기때 지었던 건물이 그대로 면사무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팔작지붕에 벽면의 절반이 유리창문이었고 바닥은 나무로 이뤄져있었다. 건물 바로 앞에는 대구면사무소의 상징인 단풍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단풍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 나무는 제9대 대구면장을 지냈던 김민두 전 면장이 10년생 청단풍나무를 면사무소 준공기념으로 1956년 8월 심었다고 전해진다. 내가 막 근무를 시작했덩 77년 당시 면사무소의 단풍나무는 지금과는 약간 모습이 달랐다.

현재는 옆으로 넓게 가지가 펼쳐져 있지만 예전에는 옆이 아닌 위쪽으로 높이 가지가 솟아있는 형태였다. 불교의 탑과 같은 모양으로 9층탑처럼 나무의 가지가 높게 솟아있었다. 모습은 다르지만 지금이나 예전이나 단풍나무는 아름다웠고 면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날은 김종호 전남도지사가 대구면을 찾아와 이 단풍나무를 보게 됐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도청으로 나무를 가져가려고 한 일이 있었다. 당시 나무는 대구면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로 면민들도 소중히 생각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로 나무를 가져가지 못했다. 그만큼 나무의 모습이 아름다웠던 것이다. <계속>


윤순학은?

마량면 산동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1977년 대구면사무소서 공직을 시작해 2017년 6월말 기획홍보실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마량면장, 성전면장, 고려청자박물관장, 의회사무과장, 문화관광과장, 주민복지실장, 기획홍보실장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으며 특히 문화에 관심이 많아 청자와 관련해서 많은 일들을 했다. 대구초, 강진중, 장흥고, 광주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조선대 정책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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