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강진군과 한반도 최북단에 위치한 함경도 북부지역간에 오래전부터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역사다. ‘제6회 강진역사문화학술심포지엄’에서 나온 내용에 따르면 1904년도에 함경도 사람과 강진 사람간에 큰 자본거래가 있었고, 당시 강진에 선진적인 교환수단이라 할 수 있는 환(換)이 거래되고 이었다.

강진과 회령은 조선시대 큰 상업도시였다. 강진은 1417년(태종 17년) 조선 태종때 전라병영성이 설치하면서 상업도시로 번성했고, 함경도 회령은  1638년(인조 16)부터 청나라와 무역을 위해 조정에서 매년 회령개시(會寧開市)라는 교역시장을 허용함으로서 상업도시로 급성장한 곳이다. 조선전기에는 만주 동부 및 여진족간에 무역을 하던 관문이었다.

강진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들어 철도가 들어선 후 함경북도로 많이 진출한다. 회령, 청진 시장을 먼저 개척한 사람들이 병영상인들이었다. 만주에 면제품 소비가 늘면서 병영상인이 그쪽 시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1920년대부터 만주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병영에만 50여명에 달했다. 중고, 하고, 도룡마을 등에 만주장사가 많았다. 이들은 보통 3-5명씩 한 조를 이뤄 ‘만주장’을 다녔다. 병영 도룡마을 김연두 선생은 일제강점기때 강진과 만주를 다니며 포목장사를 하다가 청진시에서 자리를 잡고 화물운송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또 대선재분을 창업한 작천 출신 박세정 회장이 일제강점기 장흥과 강진에서 수산물 시장을 하면서 명태를 구입해 온 곳이 바로 함경남도 원산에 있는 태동상회란 곳이었다. 이렀듯 강진과 함경도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상업을 통한 거래가 있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남북화해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강진은 청자로 해서 개성이란 도시와 이미 큰 연연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함경도까지 강진과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강진은 다른 지역이 가지지 못한 대북 자산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