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김대열 신바람유랑단 대표가 조대일 사무국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소리조아 가입하며 첫 인연
기타 지도와 인생 살아가는 법 조언
자신감 부족했던 나에게 책임감 중요성 강조
오늘날 내 인생의 컨설턴트 역할


나는 사람들에게 ‘기타 쌤’으로 통한다. ‘기타 쌤’은 요즘 사람들이 기타 선생님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얼마전 강진군에서 전라남도 전남형 동행 일자리 문화협력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강진군이 주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협력해 ‘신바람 유랑단’을 창단했다. 거기에 내가 유랑극단 대표를 잠시 맡게 됐다.

나는 사실 음악에는 문외한에 속했다. 특별히 실용음악과나 학교에서 음악 전공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공연을 하거나 하는 모습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 음악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작천 지역아동센터에서 통기타와 밴드를 지도하고 있고 작천중학교 밴드와 성전초등학교 밴드를 지도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웃지역인 해남의 현산초등학교에서 밴드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강진음악인단체총연합회 사무차장, 강진소리조아 부회장, 신바람유랑극단 대표가 현재 나의 직함이다.

그 외에도 관내에서는 소리조아 음악동아리와 울림시낭송 회원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고 강진군민 DJ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군민음악 DJ로 함께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가우도 도암 망호 입구에서 2주에 한번씩 열리는 ‘가우도 망호 열린음악회’에 행사 사회도 보면서 많은 공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 시작한 신바람 유랑단도 앞으로 총 20회에 걸쳐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3회정도 무대에 오르면서 전문 연예인 못지 않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오늘날처럼 내가 음악과 예술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조대일 강진군음악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님 덕분이었다. 조 국장님 덕분에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대일 강진군음악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조대일 사무국장님은 강진에서도 유명한 음악인이다. 특히 관내 학교에서도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보기드문 실력파 뮤지션이다. 여기에 타고난 리더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강진음악인단체총연합회는 관내 12개 음악 단체, 약 200여명이 회원으로 결성돼 활동하고 있는데 혼자서 12개 단체의 공연 일정들을 기획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사무차장으로서 옆에서 지켜보면 혀를 내 두를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꼼꼼한 일처리에 많은 회원들이 조 사무국장님을 신뢰하고 있다.

2009년 소리조아 창단 직후에 내가 가입하면서 조 사무국장님과 처음 만나게 됐다. 그때 나는 제대로 된 기타가 아닌 그저 내보이기 부끄러운 실력의 소유자였다. 말은 안했지만 내심 조 국장님이 가르칠 때 늘지 않은 실력에 실망도 많이 하셨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소리조아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약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강진읍의 중심인 버스터미널 앞에서 이동식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이다.

실력도 준비도 되지 않았던 나에게 조 국장님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그건 바로 “책임감을 담고 다녀라”였다. “음악을 하던 단체 활동을 하던 모름지기 실력보다 우선인 것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한다”는 그의 주문이었다.

사실 그 당시 실력이 부족했던 나에게 조 국장님의 말은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왔고 용기를 갖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때를 계기로 내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요즘도 자주 무대에 오르곤 하지만 오르기 전에 항상 조 국장님의 말을 가슴속에 새기면서 무대에 오르곤 한다. 무대에 오르면 내 몸을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관객과 하나가 되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로부터 7년후 현재 학교에서 나는 ‘열정과 책임감 넘치는 선생님’으로 통한다. 학생들이 발표회라도 있을때면 정규수업 시간외에도 아이들을 지도하며 독려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조 사무국장님이 말씀하셨던 책임감이 몸에 베어든 것 같다.

조 사무국장님을 내 인생에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삶의 컨설턴트’라고 하고 싶다. 조 사무국장님이 내게 해준 컨설팅 덕분에 오늘날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여년 전의 나는 음악과 예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음악과 예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조 사무국장님과 인연이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올해 67년생인 나는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면서 좋은 가이드가 되어준 조 국장님의 건강을 걱정한다. 최근에 당신이 즐겨드시는 홍삼을 선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 국장님께 받았던 선물들이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어렵다.

문득 지금의 나는 조 사무국장님의 가르침보다도 아낌없이 주셨던 애정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조 국장님과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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