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제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바로잡아 준 참교육자

한홍수 강진상록회장이 사춘기시절 방황하던 나를 바로잡아주었던 조순권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진농고 1학년 시절 담임교사로 만남
학교와 부모님에 반항심에 가출
공장일에 힘든 나에게 학교로 돌아오라 권유
사랑의 매로 잘못 일깨워주셨다


나는 칠량면 장계리 아산마을에서 3남2녀 중 셋재로 태어났다. 고향인 칠량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원예에 뜻이 있어 당시 강진농업고등학교 원예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원예와 조경분야에 많은 공부를 해보자는 뜻을 품고 경기도에 성남시에 있는 신구대 조경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후에는 인천의 한 조경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목포에 있는 회사로 옮겼다.

이때 인천에서 목포로 내려온 것은 어려서 떠났던 고향이 그리웠기때문이었다. 목포는 강진과 가깝다는 생각에 회사를 옮겼던 것이었다.

목포에서 5년 정도 회사생활을 한 뒤에는 고향 강진에서 내가 직접 조경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벌써 올해로 20년이 흘렀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속에 편하고 여유로웠다. 나는 요즘 생활에 만족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평범하게 조경회사를 운영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 만났던 조순권 선생님 덕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면 이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내가 칠량중학교를 졸업하고 강진농고에 진학했던 것은 부모님의 권유도 큰 몫을 했다.

집에서 셋째로 태어나다보니 농사를 이어받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부모님의 판단이었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진농고에 진학했던 것이다.

하지만 1학년 여름방학까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데다가 공부도 하기 싫고 부모님에게 반항심까지 더해지면서 수중에 있던 3만5천원을 들고 가출을 결심했다. 그 돈은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이었다.

이때 나는 집이 멀었던 탓에 강진읍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친했던 친구 1명과 가출했던 것이다. 부산 사상역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그때 부산에서 살고 있었던 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진농고 전경
당시 선배는 봉제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선배는 기숙사에서 하루 우리를 재워주고 다음날 부산에 신발 밑창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학교에서 공부만 했던 나에게 공장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직장 선배들에게 모진 소리를 들어가면서 힘든 일을 하면서 학교와 집이 그리워졌다.

한 달정도 일을 하고보니 추석명절이 다가왔다. 직장에서 보너스를 받은 돈으로 새 옷을 사입고 버스타고 강진으로 왔다. 오랜만에 터미널에서 학교 친구를 만나게 됐다. 친구는 나에게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고 싶어하고 통화를 하고 싶다고 전해주었다.

이 말에 나는 학교로 선생님을 찾아갔다. 학교 박공예실에서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나는 힘든 공장 생활에 지쳐있었고 학교가 그리웠다. 이런 나의 속마음을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돌아와라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10일 후면 월급날이니 그때까지만 일을 하고 학교로 돌아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교육적인 차원에서 본보기로 사랑의 매를 맞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만약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직도 공장을 떠돌며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청소년기 시절에는 누구나 학교나 부모님에게 반항을 하고 방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바로 잡아 줄 수 있어야 하는 데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바로 조 선생님이셨다. 아직도 가끔씩 조 선생님이 생각나 연락처를 수소문해보기도 했지만 1학년때 나의 담임을 맡은 이후 다른 학교로 떠나버려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근무기간이 짧았기에 연락처를 아는 분이 없어서 아직도 아쉽다.

나와 함께 가출해 공장 생활을 했던 친구는 1년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내가 2학년으로 진급했을때 친구는 1학년을 다녔다. 요즘도 가출했을 때를 생각하면 내가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된다.

요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방황하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참다운 선생님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이 때문에 나는 현재 법사랑 청소년 보호관찰 위원으로 활동하며 청소년들에게 상담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내가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와 함께 강진상록회에 가입해 14년째 활동해오고 있으며 지난해 2월에는 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지역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조 선생님과 만났던 기간은 약 6개월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인생에 있어서 은인과 같은 분이다. 선생님덕분에 나도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역의 학생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봉사하며 재밌고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젠가 다시 한번 선생님을 뵐 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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