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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사람]윤치오 도암면 지석마을 이장편.조미경 전 도암 회룡마을 이장“지금은 어렵지만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밝은 날 올 것이다”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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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11: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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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오 도암면 지석마을 이장이 어려웠던 시절 따뜻한 정을 나눠주었던 도암 회룡마을 조미경 전 이장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소짓고 있다.
10여년만에 돌아온 고향마을서 첫 만남
사업실패로 어렵던 나에게 따뜻함 전해줘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 건네며 따뜻한 격려
이사후에도 마을 오가며 잦은 왕래로 교류


나는 원래 도암면 회룡마을이 고향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지석마을과는 동령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약 3㎞정도 떨어져 있는 이웃과 같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보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시골생활을 접고 과감하게 서울로 향했고 그 곳에서 회사생활을 했다.

회사생활을 하던중 40대가 넘어서면서 명예퇴직하는 동료 직원들을 보면서 나도 내 자신의 사업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됐다. 오랫동안 생각을 하다가 강진에서 전기와 조명관련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고향 강진으로 돌아왔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강진읍에 터를 잡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나이가 30대 초반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업은 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몇 년후 나에게 남은 건 빚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에 없게 되자 나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이 생각이 났고 도암 회룡마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마을은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돈이 없고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던 나에게 고향마을은 거처할 곳조차 없는 곳이었다.

이때 나는 마을내에 남아있는 빈집 중에서 쓸만한 곳을 골라 살기 시작했다. 그곳은 낡은 집이었던 터라 비만 오면 집안으로 물이 세어들 정도였다. 수리를 해야했지만 수중에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았다.

이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어떻게 살았고 버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실 이때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주작산 정상에 까지 올라간 적도 있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때 나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신 분이 바로 당시 회룡마을이장이었던 조미경 이장님이었다.

   
조미경 전 도암 회룡마을 이장
조 이장님은 고향에 돌아와 어렵게 살고 있는 나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자치단체나 기관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이 있다면 나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그중 하나로 내가 송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주셨다.

그때 송아지 1마리를 나에게 주었고 당시에 별도로 소를 키울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에 동생 축사에서 송아지를 키우게 됐다. 나는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면서 송아지도 열심히 돌봤다. 송아지가 어느 덧 자라서 어미소가 됐고 송아지를 낳게 됐다.

하지만 운이 없었던 것이었는지 첫 번째 송아지가 뱃속에서 죽어버렸고 이후 또 다시 임신을 했지만 새끼와 함께 어미소가 죽어버렸다. 이때 또 한번 낙담을 했다.

이때도 조 이장님은 “지금은 어렵지만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올 것이다”고 말하시며 나에게 용기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조언을 해주시며 격려해주셨다.
 
이때만 하더라도 서울과 강진읍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고향으로 빈털터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 자신이 위축되고 주민들과 교류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벽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이때 조 이장님은 나에게 정말 자신의 가족처럼 돌봐주시며 먹을 것이 있거나 밭에서 수확한 식재료가 있으면 가져다주셨다.

이처럼 조 이장님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덕분에 나는 좋지 않은 마음을 먹었던 것도 잊어버리고 열심히 살아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이때부터 열심히 기존에 해왔던 전기업을 계속 해왔고 먹을것과 입을 것을 아껴가며 돈을 모았다.

이렇게 어느정도 형편이 나아지면서 나는 회룡마을에서 현재 지석마을로 이사를 하게 됐고 국제 봉사단체중 하나인 와이즈멘에도 가입해 활동을 했고 회장까지 맡으며 지역내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나 자신도 가진 것은 넉넉하지 않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전기업을 하면서 깨달았고 이들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

이때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은 나 자신도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에 남을 도울 수 있겠느냐며 만류했지만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전 도암 지석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조 이장님과 같은 마을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마을로 이사온 초기에는 바로 옆마을이긴 하지만 낯선 곳이라는 생각에 와이프와 함께 조 이장님댁을 찾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조 이장님은 항상 나에게 “열심히 사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안타깝다. 내가 가진 것이 있으면 항상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며 나에게 하나라도 더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조 이장님의 따뜻한 배려에 나는 국제와이즈멘 회장을 맡으면서 회룡마을을 찾아와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기도 했고 여름철을 앞두고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방역봉사를 하며 이장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 있어서 조 이장님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분이다. 만약 고향에 돌아왔을 때 조 이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 자신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고 넉넉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 기반을 마련했다. 올해부터는 마을이장을 맡아 열심히 일하며 마을주민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준 조 이장님에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갚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앞으로 반드시 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만사를 제치고 앞장서서 조 이장님을 도와드릴 생각이다.

아직까지 감사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조 이장님에게 진심으로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와 따뜻한 정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고 올 한해에도 모든 일이 승승장구하시길 기원해본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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