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필/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강진군은 명실상부한 귀농·귀촌1번지이다. 2007년 전국 최초로 귀농인 지원조례를 만든 이후 지난 10년간 귀농인구가 905가구, 2천270여명에 이른다. 지금까지 강진군에 귀농한 사람 중 가장 성공하고 본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필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산은 강진에서 18년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선각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다산은 귀농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굴하지 않고 자기완성을 이뤘다. 다산이 강진으로 귀농하게 된 것은 운명이다.

다산 선생의 어렸을 적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귀농(歸農)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은 정약용에게 귀농이라는 아명을 지어주며, 당쟁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귀의하기를 바라셨다.

다산이 강진에서의 힘든 유배생활을 성공으로 승화시킨 요인을 귀농의 네 가지 성공요인인 마음가짐, 주민의 협조, 끊임없는 공부, 직업에 대한 소명과 관련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다산의 유배생활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마음가짐’이다. 다산은 주민에게 따듯한 마음으로 다가갔다. 유배지에서 겪었을 서러움을 이겨내고 따뜻한 마음으로 주민들을 사랑했다. 그것은 오늘까지도 귀농을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다.

다산의 유배생활이 성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협조’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올 당시 사람들은 귀양인을 꺼려했다. 하지만 사의재 주막집 노파는 도움을 주었다. 지역 주민의 협조가 없었다면 다산의 학문이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민의 협조 그것이 다산의 유배생활 성공의 두 번째 이유였다. 지금도 귀농인에게 마을이장님을 비롯한 지역주민들 협조는 필수다.

다산의 유배생활이 성공할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는 ‘끊임없는 공부’다. 다산은 다산초당에서 제자를 양성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했다. 가문이 망해 출세할 길이 막혔으니 오히려 진정한 학문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귀농인은 도시에서 다양한 분야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나 농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이에 농업기술센터는 귀농인에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의 유배생활이 성공할 수 있었던 네 번째 이유는 ‘직업에 대한 소명’이다. 직업이 학자였던 정약용 선생님은 학문과 글쓰기에 최선을 다했다. 다산이 강진에서 18년간 남긴 저서가 약 500권이다. 귀농인은 농업인으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농사를 최선을 다해 지어야 한다. 최선을 다한다면 마을에서 인정받는 선도농업인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진군은 귀농1번지이고, 많은 시군에서 귀농정책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강진의 귀농정책은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강진으로의 귀농을 꿈꾸는 많은 분들도 다산이 강조한 따뜻한 마음, 주민의 협조, 끊임없는 공부, 직업에 대한 소명을 통해 강진에서 인생의 제2의 도약을 통한 행복한 귀농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

2016년 농림부 조사에 따르면 귀농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연환경이고, 두 번째 이유는 농업 발전가능성이다. 강진으로 귀농인들이 몰려오고 있는 건 어쩌면 운명이다. 200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만덕산 자락에서 이미 강진이 귀농의 최적지임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귀농(歸農) 정약용 선생님 강진으로 귀농 오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2017년 강진 방문의 해, 강진으로의 귀농을 환영합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