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평상만 합디다”... 어부의 한마디가 그대로 경무대까지

“꼭 평상만 합디다”... 어부의 한마디가 그대로 경무대까지
98㎝짜리 거북이 2m로 둔갑
주민들 “복받는다” 거북등에 올라타고 막걸리까지 먹여
이대통령, 창경원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결국 부산행

1949년 도암에서 잡힌 거북과 같은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붉은바다거북(학명 Caretta caretta)이다. 제주앞바다에서 찍힌 사진인데 붉은바다거북은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여름이면 남해안에 종종 나타난다.<사진=네이버>
바다거북의 크기는 최종적으로 98㎝로 확인된다. 그럼 1m 정도의 바다거북이 평상만한 크기로 둔갑해 경무대까지 보고되고, 경무대가 다시 미국 대사관에 특명을 보내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으로 공인까지 받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 사연이 재미있다. 

1949년 가을 강진군 도암에서 큰 거북이 잡혔다는 소식이 처음 올라가자 경무대에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는 지시가 강진경찰서에 내려왔다.

도암지서주임이 거북이가 잡혀 있는 도암 용산마을 현장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때는 만조때라 죽방망이에 바닷물이 가득차 물속에 있는 거북이의 크기를 알 수가 없었다.

물이 빠지고 거북의 모습을 보려면 6시간을 기다려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기다리기가 뭐한 이 지서주임이 어장주인에게 거북이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되더냐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이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꼭 평상만 합디다”

이 말을 들은 지서주임은 본서에 ‘거북이가 평상만 하다. 2m는 넘을 것 같다’고 다급하게 보고했다. 아마도 지서주임은 “무지하게 커붑디다.” “징하요 징해”를 연발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어장주인의 한마디가 그대로 경무대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평상만한 크기의 거북이는 정말 엄청난 크기였고, 그만큼 이승만대통령의 취임1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도 큰 것이였다.

강진 ‘어장주인’의 한마디는 강진경찰서와 경무대를 거쳐 미국대사관까지 건너가 세계어류학계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강진의 이름모를 촌민이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권력욕을 농락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거북의 크기가 사실은 세계 최대가 아니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대통령은 다소 실망했지만 거북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며칠사이 강진에서 거북 사건이 또 터졌다.

당시에는 거북의 등을 타면 오랫동안 장수하고 거북에게 술을 먹여 등에 섶을 놓아 불을 질러 바다로 되돌려 보내면 화를 면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제주도에는 지금도 거북을 죽이지 않고 술을 먹이고 섶을 놓아 불을 질러 바다로 보내면 화를 면한다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제주와 인접했던 강진은 그런 미신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령스런 거북이 잡혔다는 소문이 퍼지고 중앙신문에 특필이되면서 ‘강진지역주민’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용산마을 바닷가로 하루에 수백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썰물이되어 거북의 모습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줄을 서 거북등을 만져 보았다. 거북등에 타보려고 옷을 벗고 죽방망이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또 먹걸리를 주전자로 가져와 거북에게 억지로 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류전문가가 볼 때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장을 지켜본 정문기 한국수산기술협회장이 이대통령에게 다급히 보고서를 보냈다. “거북이가 벌써 막걸리 두어말은 마신 것 같습니다. 저렇게 방치하면 거북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든지 무슨 수를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화들짝 놀란 이승만 박사가 즉각 경무대경찰서장을 불렀다. 이 대통령은 거북이 주변에 보초를 서고 주민들이 일체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이때부터 죽방망이속의 거북은 24시간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이승만대통령은 거북을 서울 창경원으로 데려가 키울 작정이었다. 서울창경원에는 거북이 올라올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거북이 집까지 준비를 마친상태였다. 그러나 당대 최고 권위의 어류학자인 정문기박사는 따뜻한 바닷물에서 생활하는 거북을 서울에서 키울 경우 십중팔구 얼어 죽을 것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그래서 거북은 결국 부산수산시험장으로 가게 된다. 김회장은 이 거북을 서구(瑞龜)로 이름 지었다. 상서로운 거북이라는 뜻이다.

서울에 있던 이승만 박사는 거북을 보고싶어 안절부절이었다. 김문기회장이 거북을 부산으로 보내고 강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이대통령은 거북을 보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거북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서 거북의 가죽으로 만든 안경태를 즐겨 착용했을 정도였다. 아마도 이승만대통령은 장수하는 거북을 선망하면서 자신의 정권 연장의 꿈을 키웠는지 모를 일이다. 강진의 거북은 이대통령에게 꿈이자 희망이었던 것이다.

부산으로 옮겨간 강진의 거북은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강진 거북의 인생은 험난의 연속이었다. 강진에서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시고 갔기 때문이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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