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가 모두의 축복 속에 당당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길”

도강요를 운영하고 있는 윤도현 전남도의회 의원이 청자를 만드는 도공의 길로 이끌어 준 이용희 청자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초창기 청자재현 사업 참여 성공 기여
나에게 도공의 길 권유, 기술도 전수
오늘날 강진청자사업의 초창기 기틀 마련
항상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 중요성 강조

매년 여름이면 청자촌에서는 고려시대때 번성했던 고려청자를 소재로 청자축제가 개최된다. 올해로 벌써 45회째를 맞고 있다.

해마다 청자촌에서 열리는 축제를 바라보면 예전에 처음 청자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을 때가 떠오르곤 한다. 나는 현재는 전라남도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도강요라는 도자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도공이다.

처음부터 도공이 아니었던 내가 청자사업을 시작한 데에는 한 분의 역할이 컸다. 바로 초창기부터 강진의 고려청자재현 사업에 참여했고 요즘에도 청자를 만드는 장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희 청자장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칠량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모두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내가 삶의 길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79년 청자재현사업이 시작됐던 해였다. 내가 주로 생활했던 칠량과 대구는 가까웠기 때문에 이용희 청자장과 강진읍의 양광식 선생님, 최재남씨 등과 친분이 있어 자주 만나 음식도 함께 나눠먹고 정담을 나누곤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용희 청자장이 청자사업소가 발족되고 청자에 대해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말과 청자를 만들어보니 재미있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나와 함께 청자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헤어진 뒤로도 이 말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동흔요 이용희 청자장
당시에 나는 강진의 고려청자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던 사람중 하나였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학교를 다닐때 정수사로 자주 소풍을 가던 때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도로 사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정수사까지 나들이는 정말 일년중 큰 행사였다.

소풍을 갔던 정수사에서 우연히 청자로 만들어진 부처님상의 머리를 발견했다. 깨져서 머리부분만 남아있었지만 청자의 영롱한 빛깔에 나는 매료됐다.

이용희 청자장의 청자사업 권유에 나는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고 죽을때 나에 대한 흔적을 남길 방법으로 청자가 상당히 좋을 것이라는 판단도 들었기에 과감하게 청자사업에 뛰어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나와 양광식 선생님은 청자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기로 하면서 본격 사업을 시작했다. 가스가마를 묻고 칠량에서 소규모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에 양광식 선생님은 청자를 포기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사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이용희 청자장은 말이 없고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청자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다.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였기에 이용희 청자장으로부터 도자기 성형에서부터 유약만드는 법, 상감기법 등 청자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을 배웠다.
 
이용희 청자장은 청자에 있어서 성형, 조각, 유약 등 모두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청자의 기본인 흙 고르는 법을 강조하셨다. 좋은 흙을 고르는 방법을 옆에서 배웠고 청자의 영롱한 빛깔을 낼 수 있는 유약을 만드는 방법도 배웠다.

또 항상 나에게 청자는 조각, 불, 유약 등 모두가 중요한 종합예술이라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자주하셨다. 이뿐만 아니라 청자는 만드는 과정에서 조그마한 실수라도 있으면 청자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항상 연구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도 강조하셨다.

이후 나는 칠량쪽에서 몇몇 작가들과 함께 청자 사업을 하던중 일본 아이다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의 도공들이 끌려가 도자기를 만들었던 곳이었다.

그곳의 도자기 업체들이 모여 조합이 형성돼 있었고 집단화를 통해 1년에 1만5000명의 인구가 있는 곳에서 8천억원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깊은 감명을 받아 이용희 청자장님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과 함께 힘을 모아 현재 고려청자박물관 인근에 도자기 업체들이 함께 모여 작품을 만들게 됐고 현재는 청자조합도 결성돼 강진의 청자사업이 발전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용희 청자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던 나에게 청자 도공의 삶으로 이끌어준 이용희 청자장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분은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강진의 청자가 더욱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 젊었을 때에는 인생의 선배였고 타의 귀감이 되는 분이셨다.

누구에게나 듣기좋은 말만 하지 않고 올바른 말을 하도록 노력했고 항상 정직하신 분이셨다. 이 때문에 나를 비롯한 청자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분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내가 이용희 청자장님과 함께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고려청자가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등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아직까지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강진군민들과 행정기관이 힘을 하나로 모아 고려청자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길 바라고 꼭 죽기전에 그 모습을 보고 싶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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