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다산과 다산 제자들의 약속 다신계 절목, 내년이 제정 200주년

제자의 스승 존경, 스승의 제자사랑… 한자 한자에 깊에 새겨 있는 회칙

다신계 절목을 필사해 후손들에게 전한 윤재찬 선생
1817년 6월 어느날. 다산선생이 해배되기 1년 전의 일이다. 오랜 세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서서히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아마도 한양에서 유배가 해제될 것이라는 이런저런 기별이 왔던듯 싶다.

다산선생의 제자들은 계를 만들어 선생님이 떠난 후에도 그 뜻을 모실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여러차례 제안을 받은 다산선생은 고사 끝에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다산 선생앞으로 돼 있는 전답을 활용해 계의 재산으로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강진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다산선생은 일종의 수강료 형태로 조금씩 받은 돈을 모아 식량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논을 구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은 다산의 논을 계 재산으로 하는 대신 35냥을 마련해 지극히 권해 드리며 고향가는 여비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게 그 유명한 다신계과 동문계다. 다신계는 도암과 해남일대 제자 18명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고, 동문계는 강진읍에 사는 제자 6명이 함께 결성했다.

다산은 평소에 강진읍의 제자들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고 도암의 제자들은 평생 길을 함께 갈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들은 다산이 강진을 떠난 1818년 8월 29일 공식적으로 다신계와 동문계를 만들었는데, 내년이 이 두 계를 만든지 2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이들이 만들었던 계의 정관에 해당되는 절목(節目)에 다산선생을 흠모하는 마음과 다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애뜻한 마음이 실려 있어 흥미롭다.

다신계 회칙은 다산의 애제자인 윤규로(尹奎魯, 1769~1837)가 초안을 잡은 것이다. 다산선생이 전체적으로 내용과 문맥을 다듬었을 것으로 보인다.

회칙은 전체적으로 다산이 강진을 떠난 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건강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어떤 것들을 보낸다는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다산 선생은 강진에서 귀양살이 와중에 엄청난 저술 활동을 하면서 몸이 극도로 쇠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걱정한 제자들은 매년 봄이되면 차를 따서 스승에게 보내고, 가을이 되면 비자를 보내 스승의 건강을 돌보려 했던 것이다.

윤재찬 선생이 필사한 다신계 절목. 계원들이 지켜야 할 다양한 규약들이 들어 있다.
여름에도 차를 따서 ‘입하(立夏)전에는 만차(晩茶)를 따서 병차(餠茶) 두근을 만들라’는 문구도 보인다. 병차란 둥근 떡모양 처럼 만드는 일종의 발효차이다.

음식뿐 아니다. 음력 10월이 되면 무명베를 구입해 두었다가 인편으로 다선선생에게 보냈다. 시를 적어 보낸 것도 계원들이 반드시 해야하는 계칙이었다.

회원들은 다산이 떠나간 초당의 이엉얻는 것도 회칙에 분명하게 적었다. 귤동에 살고 있는 여섯 사람이 이엉을 엮어 동지 전에 지붕을 덮도록 하되 만약에 정해진 시기에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해 봄에 햇차를 따는 일을 도맡아 하도록 했다.

다른 사람은 절대 돕지 않는다는 부칙을 달아 놓은 것도 재미있다. 재미있는 것은 다신계의 재산운용 방식이다. 다신계는 공식적인 모임을 일년에 두차례 했다. 이때 반드시 자신이 먹을 음식은 자신이 가져오도록 했다. 계의 재산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이런저런 일을 한 후 돈이 남으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돈을 늘리도록 했는데, 이때 한 사람당 두냥을 넘지 않도록 못박았다. 또 현금을 20냥이상 모으지 말라는 규약도 정해 다신계가 행여 금전적인 관습에 치우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다.

이는 회비를 모아 먹는 일에 많이 투입하고, 회비 적립하는 것을 모임의 큰 자산으로 생각하는 요즘모임들의 생각과 많이 다른 것이다.

다신계 절목은 귤동마을에서 평생을 보낸 낙천 윤재찬 선생(1902~1998)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원본은 다산 제자의 후손중의 한사람이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진문헌연구회 양광식 회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고향에 돌아가서도 늘 강진의 제자들과 교류하며 차도 강진에서 보내온 것을 마시는등 늘 강진을 잊지 않은 생활을 하셨다”며 “내년 다신계 200주년을 맞아 강진의 제자들이 행한 정신을 오늘날 강진사람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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