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광주전남연구원장

어느 토요일 오후 나절, 화순읍내 아담한 건물에서 참 아름다운 행사가 있었다. 나무와 숲학교 입학식. 사연인 즉, 이렇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학교사로 봉사하기로 했는데, 첫 입학식이니 와서 축사를 해주면 좋겠단다. 친구는 늘 착한 일만 골라하니 무조건 예스.

어떻게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대답인 즉, 이렇다. 어느 날 도로변 플래카드에서 야학교사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결심하였단다.

친구 아버님은 일제강점기 시절 고향에서 야학교사로 헌신하셨다. 그런데 당시는 한글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서슬이 퍼렇게 감독하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아버님은 몰래 몰래 한글교육을 하시다가 일본순사가 오면 얼른 한글교본을 덮게 하고 일본어를 가르치는 흉내를 내시곤 하셨단다. 마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님처럼.

이날 야학 입학식에는 제 때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이거나 다문화가정을 꾸려가느라 힘들어 하는 외국인 배우자들이 수강생의 대다수였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밤에 나와 자신을 희생하며 가르치겠다는 교사들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날로 사회가 각박해져 가고 개인화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 이 얼마나 갸륵한 분들인가.

교사진 면면을 보니 교육장 출신의 친구, 정년교사, 시의원, 예비군 중대장, 수도원장, 기업체 대표 등 구성도 다양했다.

친구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마냥 그냥 갈 수 없지 않는가. 물어보니 조그만 강의실에 거는 벽시계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4개를 사다 걸었더니 참 좋아 보였다.

오후 2시 입학식까지는 십여분 남았는데 좁은 식장은 이미 초만원. 친구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색소폰을 꺼내 야학당의 교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멋지게 불었다.

친구가 오승근이 불러 히트한 이 노래를 교가로 지정하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바꾸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래서 축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멋있는 교가를 본적이 있냐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없단다.

이날 첫 입학생 수는 열 명 안팎이었지만 학생보다 많은 하객들로 붐볐고, 군수도 축사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반시간의 짧은 입학식이었지만 그 어느 행사보다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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