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이 기가 막혀... 주민들 벙 띄워놓고 쏙 빠져나가면 그만이라요”

지난 2일 오후 신전면 약천리 야산에 있는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문중제각. 남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좋은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에는 문중 선산에 20여기의 묘가 조성돼 있었다.

원래 이곳은 지금쯤 골프장을 만드는 우렁찬 중장비 소리가 들려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고풍스런 제각 지붕은 한쪽이 허물어져 있고, 이곳저곳이 무너져 내려 완전히 흉가로 변해 있었다. 마당 건너편 관리주택도 문이 모두 떨어지고 바람 소리만 들렸다.

“골프장이 들어선다기에 문중회의를 해서 제일 먼저 매각을 하기로 했지요. 우리문중이 매각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땅을 사기 어렵다고 하길래 협조차원에서 결의를 했던 것입니다. 제각도 새로 지어준다고 했어요. 그런 결정을 한 후 제각 관리가 됩니까. 어서 철거하고 골프장 공사가 시작되길 바랬지요. 그랬더니 골프장은 시작도 못하고 몇 년 만에 제각이 저 모양이 됐습니다.”

제각을 관리해 온 논정리 이진규씨는 “조상님께 큰 죄를 짓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금아산업의 사업 중단이 알려지면서 문중측은 무너져 내린 제각을 회사측이 수리해 주길 바라고 있으나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그렇게 되면 문중측은 자비를 들여 제각을 수리하거나 재건축을 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산 너머 논정리에 사는 A모씨의 사연은 또 이렇다. A씨는 골프장 부지에 포함된 논 4천여평을 회사 측에 넘기기로 하고 2007년 초 2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소유권도 이전을 해주었다. 계약금을 받고 나서 중도금과 잔금을 해결해 줄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지난해 10월 초에는 신전에서 운영중이던 (주)금아산업의 강진사무소 운영도 중단됐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사업을 중단하면 땅을 되사야 할 텐데 계약금으로 받은 돈은 이런 저런 용도로 모두 써버렸어요. 시골에 돈 쌓아놓고 사는 집이 어디있습니까. 땅을 되사려면 빚을 내야 할 처집니다”

(주)금아산업측이 사업을 중단하면서 팔았던 땅을 되사야 할 처지가 됐고, 회사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모두 써버렸기 때문에 빚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주민들이 좁은 지역사회에서 55명에 달하고 있다.

신전골프장 사업이 그동안 걸어 온 길은 골프장 코스 만큼이나 복잡하고 난해했다. (주)금아산업이 신전면 벌정리 일원 36만9천여 평에 600억 원을 투입해 회원제 골프장 18홀과 승마체험장, 숙박시설를 짓겠다고 한 것은 2007년 4월이었다.

당시 강진군은 신라CC라는 걸쭉한 업체로부터 도암골프장 투자를 약속받아둔 상태였기 때문에 ‘부산의 돈 많은 사업가’가 신전에 또 하나의 골프장을 짓겠다고 나타난 것은 분명한 낭보였다.

회사측은 지역금융기관에 사업예치금까지 넣어가며 사업에 열성을 보였다. 골퍼들은 지역에 골프장이 두 개가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신전 관광휴양단지는 초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토지매입 단계까지 들어갔으나 수산자원 보호구역 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 3년 동안이나 사업이 표류했다. 골프장과 휴양단지가 들어설 예정부지에 수산자원보호구역이 69%나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2009년 초 들어 30% 정도의 토지를 매입한 상태에서 사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왔다.  사업자는 금융기관에 예치해 놓았던 돈도 찾아가 버렸다. 군이 당초 투자유치를 하면서 해당지역이 수산자원보호구역이 있고 골프장을 건설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다.

MOU체결 당시 사업계획은 각종 인허가등을 2008년 6월말까지 마무리하여 2009년 12월까지 사업을 완공한다는 계획이였다. 그러나 수산자원보호구역 문제 때문에 사업이 3년 이상 지연된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돌파구가 보인게 2010년 3월 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3년 동안 협상해 오던 수산자원보호구역 해제 요청이 수용된 것이다.

이어 지난해 4월 수산자원보호구역 해제가 고시되고 개발촉진지구 개발계획 변경 승인 후 8월에는 자연환경보전지역 해제가 고시되는 등 발목을 묶고 있던 각종 규제가 모두 풀리는 모습을 보여 주민들 사이에 이제 삽질만 시작하면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였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주)금아산업의 강진사무소 운영이 중단된데 이어 올 들어서도 회사 측 움직임이 거의 없자 주민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고, 주민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군이 회사 측에 세 차례에 걸쳐 사업추진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회사 측이 강진군에 지난해 10월 17일자로 ‘부득이하게 사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회신 해 옴으로서 신전골프장 건설 사업은 강진군과 회사 측의 MOU체결 5년 만에 셔터를 내리게 됐다.

받은 계약금 모두 써버렸는데 주민들 땅 되사야 할 판
골프장 사업, 5년 동안 신전을 흔들흔들... 손에 잡히는 것보다 마음의 상처 더 커
‘국회의원 선거 후까지 사업 중단 유보’ 주민들 두 번 울리는 꼴


(주)금아산업측의 회신을 받은 강진군이 부랴부랴 회사를 찾아가 설득에 나섰으나 사업포기입장은 이미 굳어 있었고, 군은 차선책으로 공식적인 사업 중단을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하자는 선에서 협의를 마무리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문접수 후 40여일만에 군수가 사퇴하고 총선에 출마했기 때문에 강진군이 군수의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사업 중단 시기를 선거 이후로 미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금아산업측이 외형상으로 제시한 사업포기 이유는 지난해 6월 30일 나온 골프장 부지 강제수용에 대한 헌법소원 심의 결과이다. 골프장을 건설 할 때 주민들이 땅을 팔지 않으면 일정한 부지를 강제 수용 할 수 있다는 법규가 있는데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것.
헌법불합치는 위헌결정이나 마찬가지다.

회사 측은 이 결정이 현재 68% 정도 남아 있는 토지의 매입을 어렵게 하고, 기존에 매입했던 토지마저도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도저히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이 종식을 고하자 지난 5년 동안 골프장 건설만 기다리던 신전면 일대는 공황상태다.

주민들이 반납해야 할 계약금 문제와 같은 것은 눈에 보이는 일이지만 지역과 지역주민들의 맺힌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크고 넓다는 것. 한 주민은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동네 주민들은 골프장을 건설해서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땅을 팔아야 한다고 해서 팔았어요. 중도금과 잔금을 모두 받으면 이제 떠날 궁리만 했단 말입니다. 일이 손에 잡혔겠습니까, 집안에 못질하나 했겠습니까. 모든게 둥둥 떠 있었는데 이제 와서 골프장을 하지 않는다고 땅을 다시 찾아가라면 모든 게 원위치가 된답니까... 그것만 하면 끝이랍니까”

논정리 일대는 기반시설 투자가 그동안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마을이 비워지고 골프장이 들어설 곳에 군이 도로포장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논정리 일대는 다른 지역보다 최소한 5년 이상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주민은 “사업이 어떻게 중단됐는지도 알 수 없고, 왜 중단됐는지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마을을 5년 동안 흔들어 놓고 이제와서 그냥 사업을 중단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는 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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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골프장 중단, 회원권 폭락도 원인?

(주)금아산업이 신전골프장 건설사업을 접은 것은 최근의 골프회원권 폭락도 한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전골프장은 회원제 18홀규모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그동안 회원제 골프장 개발자들은 자기자본이 거의 없어도 회원권 분양대금으로 상당한 사업비를 확보하곤 했었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회원권이 폭락하고 거래마저 끊기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 

금아산업이 신전골프장을 추진하던 2008년까지만 해도 골프장 회원권은 사 놓기만 하면 가격이 오르는 '유망 투자상품'이었지만 요즘은 투자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골프 붐을 이끌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5년생)의 은퇴가 시작됐지만 그 뒤를 받쳐줄 세대의 소비 여력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골프장 회원권 평균가격(117개 기준)은 5년 전보다 53% 떨어졌다.

명문 골프장으로 꼽히는 경기 가평베네스트와 남촌의 회원권 값은 7억원대로 2007년(17억~19억원)의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13억원이 넘던 렉스필드 회원권은 5억원대로 주저앉았다.

또 올해 전국적으로 33개의 골프장이 새로 문을 열 예정이고, 현재 인허가를 추진하고 있는 골프장이 80여개에 달한다.

 

■신전관광휴양단지 조성사업 주요일지

2007년 4월: 강진군과 (주)금아산업 MOU체결
2009년 3월: 수산자원보호구역 문제로 사업중단
2011년 4월: 수산자원보호구역 해제
2011년 8월: 자연환경보전지역 해제
2011년 9월: 강진군, 사업추진 촉구 1차 공문
2011년 10월: 사업추진 촉구 2차 공문
2011년 10월 21일: 사업중단 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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