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용/도암교회 장로,도암노인대학 교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산세가 좋고 명당도 많은 곳 도암(보암 1914) 땅 가우리 출렁다리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이다.

이곳은 강진·완도 방면과 강진마량(고금) 방면 두곳으로 오실 수 있으며, 강진·완도 방면으로 오시면 도암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5km 지점으로 전에는 도암면 망호리 월곶지 선창에서 대구면 저두리 중저로 나룻배로 왕래했으며, 부산에서 해창까지 기름배가 오가던 길목이기도 했다.

망호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인 조선시대에는 월곶지리(1789)가 한개의 행정마을로 자리잡고 있었다. 장흥의 유치골에서 흐르는 탐진강의 물과 영암의 월출산에서 흐르는 물 등 아홉골의 크고 작은 냇물이 모여드는 강 구강포 위에 떠있는 강진군 8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로 가우리는 섬의 형국이 소 멍에 같다 하여 가우도라 부르게 되었다.

섬에는 약600여년전부터 서쪽 부근에 고씨 20여호가 자리잡고 살다가 떠나갔고 현재는 경주김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현재(2016.1.1) 총가구 20호로 인구는 53명 거주하며 강진군 명소 12경 중 제9경으로 가고싶은섬 가우도 이다. 강진군은 1읍 10면으로 가우리(2007, 3승격)는 도암면 36 마을중의 하나이다.

산 정상 북쪽 8부능선에 평평한 터가 약200m있는데 가우도 주민들이 어린시절 달리기 등을 하며 놀이터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말달리 까끔(동산)’이 있으며 6층 높이의 청자조형 전망탑이 있는데 공중하강체험시설(짚트랙)이 설치되어 있으며 2층은 각자 소원을 청자로 구워 붙인 조형탑을 소원문과 함께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가우리는 후박나무 군락지로 2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고 황칠나무, 고사리, 돈나무, 해당화 등이 피고지며 이곳에서 잡히는 고기는 낙지, 전어, 장어, 오징어, 황가오리며 해산물로는 꼬막, 굴, 바지락, 전복 등 다양하다.

출렁다리 길이는 망호리 월곶에서 가우도까지 715m이며 대구면 저두마을에서 가우도까지 438m로 2개의 해상 보도교로 되어 있으며 가우리 함께해길은 남쪽 산책로가 0.8km이며 북쪽 산책로도 1.7km에 이르며 시멘트길, 나무데크길, 흙길, 테마별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다.

남쪽 산책로 중간 영랑나루쉼터가 있는데 시 몇수 감상하며 의자에 앉아있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대표적인 시인 강진이 낳은 영랑선생님(5백석지주자)과 사진한장 찰칵~.

가우리는 서쪽 방향으로 위에서부터 만덕산, 석문산, 봉덕산, 덕룡산을 따라 내려가면 대한민국의 남문인 주작산이 있으며 동쪽 방향으로 칠량 도암산, 여계산에 둘러 싸여있다.

1967년도에 가우분교를 설립하고 1995년도에 폐교가 되었다. 한때는 학생 둘이서 ‘바다조수에 관한 연구’로 대통령상 수상 실적도 있었다.

1974년도에는 최초로 전기가 들어왔고, 1978년 MBC 9시 뉴스톱 기사로 방영됐는데 전국 최초로 청정해역으로 지정 선포되기도 했으며, 가우리 북쪽 섬 죽도는 신우대가 많다고 하여 대섬이라 했고 북쪽 30리 밖에는 강진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경관좋은 곳이다.

남쪽섬 비라도는 대하(닭새우)어장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비라도를 찾는 강태공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어장의 건너편 칠량에 30세 된 최씨 총각이 살았는데 이 총각은 원래 성품이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가난하기는 하지만 노부모를 지성으로 공양하여 마을에서도 효자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어느날도 단 하나뿐인 자기 재산 어선에 몸을 싣고 다른날과 같이 비라도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바다에 그물을 치고 한동안 바위끝에 앉아 어장을 바라보자니 무엇인지 모르지만 적지않은 물체가 떠내려와 그물에 걸리는 것이다.

그물을 걷어 올리는데 싸여올라온 것이 묘령의 처녀시체였다. 이를 본 최총각은 한때 정신을 잃을만큼 놀랐지만 다시 정신을 수습하여 보니 숨을 쉬는 듯 선녀인 듯 생기가 도는 듯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최총각은 진심으로 애석하게 여기면서 지성을 다하여 그 시체를 정결한 곳을 찾아 장사를 치루고 섭섭한 정을 남기면서 비라도를 등지고 노를 저었다.

그날 저녁 최총각은 오늘 본 안타까운 처녀의 주검을 눈에 그리면서 잠이 들었다. 꿈에 나타난 처녀의 모습은 너무도 요뇨하였다. 자기앞에 단정히 꿇어 앉은 자세로 “서방님 어서 일어나 어장에를 나가보십시오” 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총각은 다시 섭섭한 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 아직 날이 밝기 전에 이른 새벽물결을 헤치며 노를 저었다. 비라도에 이른 총각은 새벽햇살을 받으면서 그물을 걷어 올리니 상상도 못할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 뒤에도 간간히 처녀는 총각의 꿈길을 찾아 어장을 일깨워주고 그때마다 총각은 풍어를 거듭하였다 한다. 지금은 비라도에서 처녀의 무덤을 찾을 길이 없고 최총각의 후예가 도암의 누구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다.

가우도와 비라도 사이 어릴 때 가을 밤이면 전어잡이 배들이 진을 치며 “올라가는 전어야 내려가는 전어야 코코마다 걸려라” 뱃전을 두드리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지금은 출렁다리 입구로 아스팔트주차장으로 말끔히 단장이 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바다위로 솟은 바위 셋이 있었는데 매립되었다.

이 바위가 일명 전어바위였고 위쪽으로 1km길이의 모래가 해안에 깔려있어 어릴때 물놀이하던 해수욕장이었으며 2km쯤 더 올라가면 농어바위가 있다.

가우리내 한옥팬션과 마을식당, 황가오리빵 판매, 유료낚시터도 활용해봄직도 하다. 강진으로 향한다면 일정을 조금 넉넉히 잡아 도암의 관문 강진의 소금강 석문공원내 사랑⁺ 구름다리를 돌아보는 걸 추천한다. <출처: 내고장의 전통(강진군 1981),우리고장 강진의 자랑(강진군교육청 1986),강진군 마을사(도암면편 2001),강진문화기행(김선태지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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