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한 지역 주민위해 사재털어 학교 설립

신전면 용정마을 이선주씨가 지역주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이은방 선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신전초 전신 도암영화간이학교 설립
후원회장 맡아 학생들 적극 지원
6.25 전쟁때 우익으로 몰려 재산 몰수
전쟁후 되찾아 면사무소에 기금 기탁

신전면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신전면에서도 우리 용정마을은 뛰어난 인물이 많아 아직도 내 고향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우리 마을출신 인물중에서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바로 이은방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은 나이로 봤을 때 나에게는 할아버지뻘정도 될 정도로 연배차이가 많이 나는 분이다. 내가 이 분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유한 생활을 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족들만 위한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지역과 마을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사실은 바로 자신의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내에는 학교가 있었다. 신전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규모가 꽤 컸다. 현재 마을회관이 있는 곳 바로 앞에 학교가 있었다. 현재는 감나무가 심어져 있지만 우리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지역과 마을에서도 배우기 위한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다.

1900년대초에 용정마을 일대는 백도면이라는 행정구역에 속해있었다. 이때부터 마을내에는 학교가 존재했다. 바로 마을의 유지들이 돈을 모아 설립된 학교였다. 이 학교는 오래가지 못해 없어졌다. 이후 백도면이 도암면으로 바뀌게 됐다. 바로 이 때 이은방 선생님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당시에 이 선생님은 천석꾼까지는 못됐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유한 집안출신이었다.

마을주변의 대부분의 논이 이 선생님 집안 소유로 엄청난 부자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편하게 삶을 살수도 있었지만 이 선생님은 당시에 어려운 생활형편에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고 학교를 세우겠됐다. 이 선생님은 자신 소유의 밭을 기부해 학교를 세웠고 학교이름은 당시 도암면에 속해있다해서 도암영화간이학교라고 했다.

지금처럼 6년제가 아니라 2년제였고 주로 배울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형편이 어렵거나 일하느라 바빠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사람들이 주로 학교를 다녔다. 이에 대부분의 학생들의 나이도 10대에서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이 선생님은 후원회장을 맡아 학교를 적극 지원했다. 이후에 이 학교는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를 받고 6년제로 변경됐고 학교명도 도암남국민학교로 바뀌게됐다. 이 학교는 용정마을뿐만 아니라 사초리, 논정과 도암면에서도 올 정도였다.

정식적으로 학교로 인정을 받으면서 학교가 위치상 다소 남쪽에 위치해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현재 신전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신전면 대월리로 이전하게 됐다. 이후부터 신전면 일대를 대표하는 초등학교로 자리매김했다. 학교가 이전할 때 당초에는 현재 신전면소재지 일대에 학교가 들어서야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이 선생님은 용정마을을 비롯한 남쪽의 마을들에게 학교가 너무 멀다고 주장해 현재 위치에 들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

이은방 선생의 친동생인 이은표 선생. 이은표 선생은 일제시대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이 선생님은 항상 인자한 인상에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워준 덕분에 글을 몰랐던 마을사람들이 글을 배울 수 있었다. 현재 70~80대 마을주민들은 대부분 선생님의 혜택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민들 모두가 존경했다.

약주를 즐겨하진 않으셨지만 식사때 반주로 소주 1잔을 드셨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소주를 항상 데워서 따뜻하게 해서 드셨던 기억이 난다. 또 집안이 부유햇던 탓에 모진 고초도 많이 겪으셨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지역에 북한군이 점령하면서 사람들을 착취해서 돈을 모았다는 누명을 씌워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기도 했고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내야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부 재산을 다시 되찾았지만 그때도 선생님의 지역사랑을 계속됐다. 면사무소에 수차례에 걸쳐 마을과 지역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기금을 기탁했던 것이다.

또 이 선생님의 친동생인 이은표 선생님은 일제시대에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독립투사기도 했다. 이처럼 이은방 선생님과 그 가족들은 신전면과 지역발전을 위해 많은 것을 감수하면서 희생하셨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6.25 전쟁으로 인해 이은방 선생님의 동생분의 사진은 남아있지만 이 선생님의 사진은 전쟁통에 분실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리=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